[다산로에서]바다를 도전하여 성공한 나라 네덜란드
[다산로에서]바다를 도전하여 성공한 나라 네덜란드
  • 강진신문
  • 승인 2010.03.12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바다<고대해양탐험가·바다 박물관장>
네덜란드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멀고도 아주 가까운 나라이다. 그 배경에는 하멜 청년이 있다. 하멜은 그의 '난파표류기'가 독일, 불란서,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로 출판되면서 한국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한 주인공이다. 그는 1653년 8월 일본으로 항해중에 태풍을 만나 제주에서 난파 되면서 13년 억류생활에서 겪은 풍습, 제도들을 이 표류기에 기록 하고 있다.

15세기부터 포르투칼, 스페인 함선들은 신대륙을 찾아 대 항해 시대를 열어 갔다. 그 각축전에 네덜란드는 1백년이나 뒤 늦게 뛰어 들어 1592년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 허드슨강에 상륙하여 최초의 도시 뉴암스텔담을 건설하였다. 이 도시가 바로 오늘날 뉴욕으로 바뀐 것이다. 1630년 인도네시아에서 향신료를 둘러싼 무역경쟁에서 포르투갈을 제압하고 아시아 무역항로의 패권국가로 등장하였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 하겠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 나라 청년들의 도전정신과 기록정신들을 꼽을수 있다.항해 기록은 다음 항해자를 위하여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하멜 표류기가 여러 나라에서 출판이 이루워진 것은 미지의 나라 한국에 대한 위치와 물산 그리고 뱃길을 찾아 가는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1580년 네덜란드 3명의 청년은 포르투갈 무역선을 타고 인도에 갔다. 이 배를 탄 청년들은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몰래 기록하였다.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이 기록들을 출판 하였다.

이 항로 기록을 통하여 포르투갈의 개척항로를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이들의 개척항로를 밟아 아시아 무역항로를 제패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것이다. 포르투갈 배에서 얻은 항해 기록이 네덜란드의 대 항해시대를 열어가는 열쇠가 된것이다. 성실한 기록정신과 관찰력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옷 차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패션의 도시 파리,이태리에서 선보이는 유행을 찾아 보기란 어렵다.

우리나라처럼 유명 브랜드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편리한 복장들을  선호한다. 더치패이dutch pay 라는 유행어가 있듯이 이들은 합리적인 사고로 서로 부담이 없고 편안한 인간 관계를 펼쳐 간다. 이들의 계산은 투명성과 국가의 부패방지로 연결된다.

원칙을 존중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앞세우고 낡은 가치관을 주저 없이 버리는 근검절약 정신에 고개가 숙여 진다. 큰 선물 보다 작은 선물에 더 고마워 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인은 집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는 검약정신에 우리도 눈을 돌려 보자.

이나라 사람들의 친절미와 친화력은 세계 최고라 하겠다. 이들은 처음 만났어도 오랜 친구 같은 인상을 누구에게나 심어 준다. 문제점에 대하여 상대에게 협조를 구하고 해법을 찾아 나선다.이 나라의 토론 문화는 가정에서부터 싹트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의 의견차의도 대화와 토론으로 풀어 간다. 우리가 명분에 메달려 시간을 허비하는 반면에 이 나라는 명분보다 실용을 앞세워 갈등문제를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한다.

네덜란드는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이웃 나라 독일, 불란서, 벨기에, 영국 등 주변국들과 오랜 전쟁으로 시달렸으나 이들은 친화력으로 대화를 이끌어 이들 나라와 소통이 잘 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꽃의 나라답게 부드러운 대화가 이 나라의 경쟁력으로 넘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