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글>김장김치를 먹으며
<선생님의 글>김장김치를 먹으며
  • 강진신문
  • 승인 2010.03.0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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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숙 I 강진여중 교사
늦은 밤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과 함께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벌써 집에서 엄마를 눈 빠지게 기다릴 참새 같은 자식들 생각, 내일 아침 준비해야할 반찬거리 생각에 마음이 조금씩 바빠 오기 시작했다.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몇 가지 집안일을 기술자처럼 후다닥 해치우고 없는 반찬으로 가족과 허기를 메우고 나니 어머니가 반가운 목소리를 전하며 김장을 하였다고 택배로 보낸다는 전화연락을 주셨다.

그 휘어지신 허리로 한 두 명도 아닌 자식들 먹이시려고 혼자 배추 다듬고 소금에 절여 김치가 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손수 다 하셨을 그 노고가 안쓰럽고 죄송스러워 버럭 화부터 내고 말았다. 이제는 그만 두시라고 자식에게 할 만큼 하셨으니 이제는 받아야 할 때라며 투정을 부렸다. 

철부지 시절, 김장하는 날만 되면 가족 모두가 하나씩 일손을 맡아 고사리 손일망정 찬바람에 호호 불며 함께하는 즐거움에 종일 신이 났다.

나는 오빠와 함께 무를 채칼로 썰고 언니는 엄마를 도와 배추를 씻고 물기를 빼고 하면서 아이들은 딱히 하는 일없이 참여한다는 마음으로나마 그날은 들떴다. 그러다 하나씩 얻어먹는 통깨를 듬뿍 묻힌 김장김치 속잎이 참으로 달고 맛있었다.

부모님의 마음 역시 월동준비를 어느 부분에서 마쳤다는 보람도 있었겠지만 얼마나 힘겨우셨을까? 며칠 전부터 해결해야할 커다란 숙제처럼 김장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짐스러웠을까?

그 시절부터 해온 김장을 어머니는 지금껏 50여년이 넘도록 가족을 위해서 똑같은 수고를 매년 반복하신다.

저녁 무렵, 어머니의 애틋한 손길이 가득한 선물이 고향 소식과 함께 배달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여러 겹 단단히도 묶어놓은 포장을 벗겨내고 뚜껑을 여는 순간 전라도식 구수한 김장김치 냄새가 코끝으로 훅 다가오면서 순간 입에 군침이 돈다. 울긋불긋하고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김치 속으로 어머니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뚝하고 떨어진다. 흐린 눈에 보이는 조그만 봉지묶음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작은 봉지 봉지마다, 생강가루 들깨가루 콩가루 버섯가루라고 종이에 이름을 적어 봉지 안에 내용물과 함께 넣어 둔 여러 가지 가루들이다. 바쁠 때 편리하게 음식에 넣어 먹으라는 부모님의 사랑의 메시지이리라.

평소 부모 생각은 많이 하질 못하면서 도리어 복에 겨워 버르장머리 없이 자라는 자식들만 챙기기에 급급한 못난 이 딸자식이 밉기도 하겠건만 지금껏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 나의 부모님. 세상일에 힘들고 지칠 때마다 말없이 다가와 위로해주고 따뜻한 온정을 던져주는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누구나의 가슴에도 하나쯤은 한낮에도 반짝이는 소중한 별빛이 있다. 시냇물 속에 누워 있는 보잘것없는 조약돌이 달빛으로 반짝이듯 그렇게.

세상이 삭막하고 메말라 간다고들 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 사랑을 잃게 될까봐 두려움으로 눈을 꼭 감아본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게 되길 소망하여 본다.

반딧불이처럼 야윈 몸 한편에 희망이라는 불빛을 매달고 어두움을 밝혀주는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오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나의 인생에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을 바탕으로 어떠한 꿈보다 더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것은 더욱 소중하리라.

어머니! 자신을 버릴 때 비로소 사랑을 줄 수 있음을 배웁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한 줄기 맑고 투명한 빛을 밝힐 수 있는 힘을 얻어 갖습니다. 사랑합니다.<이 글은 강진여중의 교지인 '모란마을 2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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