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이학래(李鶴來)의 헛갈리는 행적
[다산로에서]이학래(李鶴來)의 헛갈리는 행적
  • 강진신문
  • 승인 2010.02.05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병기<연세대 다산실학연구원 연구교수>

황병기 교수
다산이 강진읍내에서 길러낸 걸출한 제자 이청(李田+靑)은 파면 팔수록 수렁에 빠지게 하는 인물이다.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다산이 해배된 이후 이청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점이며, 둘째 공교롭게도 이학래(李鶴來)라는 관리가 비슷한 시기 호남에서 관직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다산제자 이청은 본명이 청(𤲟)이고, 자가 학래(鶴來) 또는 금초(琴招)이며 호는 청전(靑田)이다. 1792년 출생하였고, 1802년에 유배자 다산에게 입문하여 이후 해배될 때까지 다산의 저술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산학 수립에 가장 공이 큰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1861년 70세 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청의 대표적 저서인 󰡔정관편󰡕에 ‘계림(鷄林) 이청(李𤲟) 찬(纂)’으로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이청의 본관은 경주이다. 다산은 1806년 가을부터 1808년 봄 사이에 이청의 집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다산은 강진에서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 가장 총명한 인물로 이청을 들 정도로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총애했다. 이청은 다산이 해배되어 1818년 고향 마현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정약용을 지척에서 도왔다.

그런데 1818년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황상 등과 함께 여러 차례 경기도 마현의 여유당으로 다산을 찾아가 안부를 전했으며, 경기 일원의 추사학단 인물들과 교유했다는 정도 밖에는 알 수 있는 정보가 빈약하다.

그런데 또 다른 이학래가 타이밍도 절묘하게 이즈음 호남에 나타난다. 그는 바로 장흥부사에까지 이른 관리 이학래이다. 이학래는 세종임금의 아들 계양군 증(璔)의 후손이며, 음관으로 1870년 12월 24일 전남 동복현감으로 제수되었고, 1874년 5월에 전남 보성군수로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1875년 12월에 경북 영천군수로 이임되었다가 1880년 7월에 장흥부사로 승진하였고 1882년 12월 파면된 사람이며, 이듬해 1883년 7월 즈음에 사망하였다.

1870년 이학래가 동복현감으로 내려왔을 때는 이미 다산제자 이청이 사망한 지 9년이 지난 뒤였지만, 그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청의 연고지와 이학래의 관소가 같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장지연(1864-1920)이 편술한 󰡔대동시선󰡕에 이학래(李鶴來)라는 이름으로 시 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의 시가 요즘도 자주 다산제자 이청의 시로 오인되고 있다. 장지연은 이학래에 대해 “자는 경고(景皐), 호는 청전(靑田), 전주 사람이다. 순조 갑신년(1824) 출생하여 음관으로 부사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부사에 이르렀다’는 말은 이 이학래의 마지막 임관지인 장흥부사직을 가리킨다.

2008년 간행된 󰡔다산종합도록 다산 정약용󰡕(강진군)에 소개된 이학래의 간찰도 내용상 다산제자 이청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산송(山訟)에 관련된 내용으로 지방관의 처결내용인 것이다. 장흥 출신의 김경현(金擎鉉, 1823-1906)의 시문집인 󰡔지운집(止雲集)󰡕에도 이학래와 관련한 구절들이 보이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학래는 다산제자가 아니라 관직생활을 한 이학래이다.

이 외에도 호남지역에서 발견되는 간찰들은 관직생활을 한 이학래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많다. 단순히 다산제자 이청이 강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으레 호남지역의 자료들을 다산제자 이청에게 곧바로 귀속시켜서는 큰 오류를 낳게 된다.

다산제자 이청은 장년기 이후 호남지역에 남긴 흔적이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관리 이학래는 비록 음관이지만 1870년 동복현감으로 부임하면서 1882년 장흥부사로 관직을 마칠 때까지 약 8년여를 호남지역에서 보냈기 때문에 강진출신 이청보다 오히려 더 호남지역에 남긴 흔적이 많다.

이 두 사람을 비교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는 헛갈리지 말기를 바란다.

이청(1792-1861): 다산제자, 경주 이씨, 본명이 청(𤲟), 자가 학래(鶴來) 또는 금초(琴招), 호가 청전(靑田) 또는 학림(鶴林).
이학래(1824-1883): 전주 이씨, 본명이 학래(鶴來), 자가 경고(景皐), 호가 청전(靑田), 관직으로 동복현감, 보성군수, 영천군수, 장흥부사를 지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