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오봉산 맑은 물 마을앞을 지나가고
[마을기행]오봉산 맑은 물 마을앞을 지나가고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12.04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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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면 야동마을

▲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야동마을은 좁다란 마을 안길을 따라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고 마을 뒤편으로는 오봉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다.

강진읍에서 작천면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 드문드문 쌓여가는 낙엽이 겨울 초입으로 들어선 계절을 말해준다. 초겨울의 매서워진 날씨는 마음시린 주민들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도로변의 풍경이 앙상한 가지만을 한껏 드리우고 있는 가운데 찾은 곳은 작천면 야동마을.

작천면소재지에서 병영방면으로 2.5㎞ 정도를 달리다보면 작천교와 하당마을을 지나 왼쪽방면으로 지방도 814호선이 펼쳐진다.

이 도로를 따라 1㎞를 더 달리다보면 부흥리를 지나 도로의 우측으로 야동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볼 수 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솟아오를 것 같이 농촌의 정겨운 모습을 담고 있는 가옥들을 볼 수 있다.

야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600여년전 경주이씨가 처음으로 입촌해 자자일촌을 이루고 살면서 풀무형국에 터를 잡았다고 하여 풀무동 또는 불무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풀무란 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를 일컫는다.

이후 1800년대에 전주이씨, 김해김씨, 밀양손씨 등이 이거해 오면서 풀무 야(冶)자를 사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마을에는 전주이씨, 김해김씨, 해남윤씨 등 40여가구 60여명의 주민들이 50여㏊ 농경지를 터전으로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고 있다.

이중 2농가에서 비닐하우스 시설을 이용한 토마토, 오이 재배를 하고 4농가에서 한우 120여두를 사육하고 있다.  
 
마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회관에는 주민 5명이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마을에 대해 묻자 이순임(87)할머니는"뒷산인 오봉산 줄기와 바람재 사이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이다"며 "오봉산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물은 주민들의 식수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봉산 불무골에 자리 잡고 있는 물맞이골에는 현재까지도 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오는 물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식수가 좋은 것으로 유명한 야동마을은 그것을 증명하듯 마을 내에는 가운데고랑물, 동쪽고랑물 등 크고 작은 샘터 자리가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봉산 불무골 발치에 자리 잡고 있는 물맞이 골이 마을의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물맞이 골은 일제시대 당시 돌을 캐던 채석장이다.

예부터 이곳에는 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오는 시원한 물이 고였다고 전해지는데 바위를 따라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면 피부병이 없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 때문에 지난 1950년대에 나병환자들이 몰려와 물을 맞는 일이 생기면서 물맞이 골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마을주민 몇몇은 물맞이의 물을 떠다 목욕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천 또한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이다. 성천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가를 가리키는 곳으로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붕어, 은어, 새우, 자라 등이 서식할 정도로 깨끗함을 자랑했다고 한다.

현재는 제방축조 후 골재 채취 등으로 인해 물이 더러워져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 주민 이문규(68)할아버지는 마을의 자랑거리로 마을회관 앞에 자리 잡은 우산각을 손꼽았다. 66㎡(020여평) 규모로 지어진 우산각은 사방이 뚫려있는 탓에 넓은 들판과 병영면소재지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왼쪽 한켠에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마을회관 주위에 일렬로 자리 잡은 5그루의 벚꽃나무 역시 우산각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4월경에는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벚꽃나무는 지난 1934년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식재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마을회관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난 2002년 준공된 마을회관은 찜질방, 휴식실, 샤워실 등을 완비해 농민들의 피로 회복은 물론 주민들의 화합장소로 이용되는 등 종합적인 문화복지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밖에도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런닝머신, 롤링베드 등 7종의 건강관리기구를 갖추어져 있어 주민들의 복지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 마을 우산각 주변은 연못과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주민들에게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비록 마을은 고령화되고 규모도 줄었지만 작은 일에도 온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할 정도로 이웃을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만은 군내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소박한 농민들의 바람으로 농촌의 밝은 내일이 오기를 바랄뿐이다.
 
마을출신인물로는 강진농고와 목포상고 교장을 역임한 최병량씨, 광주보훈청장과 화순군수를 역임한 최병수씨, 병영동국교 교장을 역임한 최병원씨, 강진중앙초등학교를 거쳐 광주, 전남 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성경식씨 등이 있다.
 

■인터뷰

"농작물 수확 항상 감사한 마음"

마을 최고령 조병문·정영애 부부

마을에서 최고령자인 조병문(91)할아버지를 만났다. 조 할아버지는 부인 정영애(84)할머니와 집 거실에서 고추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 할아버지는 올해도 5950㎡(1천800여평)의 논농사와 660㎡(200여평)의 밭면적에 마늘, 콩 등을 재배했을 정도로 9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고추농사에 대해 조 할아버지는 "올해 2천여주를 심어 500근 정도를 수확했다"며 "한해 농작물 수확량은 하늘의 뜻이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1남6녀를 두고 있는 조 할아버지 부부는"해마다 고추, 마늘, 콩 등을 수확해 서울, 광주 등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주고 있다"며 "자식들은 우리들 걱정에 농사일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 일이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기에 해마다 잊지 않고 수확물을 보내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척박한 농촌 현실을 이기지 못해 이농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후손들이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 되어 마을의 명성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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