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강진청자
[다산로에서]강진청자
  • 강진신문
  • 승인 2009.11.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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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길성<강진포럼 공동대표>
지난 추석 연휴에 한 방송사에서 '고려청자 비색(翡色)의 유혹'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청자가 만들어진 배경과 제작과정 등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해 청자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강진에서 만들어진 고려청자가 왜 천하제일로 평가되고 있는지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고려청자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칭송했다. 영국의 미술사가 윌리엄 하니(W.B. Honey)는 "고려도자기는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지금까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우아하며 꾸밈새 없는 도자기이다"라고 하였으며, 중국 송(宋) 나라의 학자 태평노인(太平老人)은 그의《수중금(袖中錦)》이라는 책에서 천하제일의 명품에 고려청자를 꼽았다. 또한 같은 시기에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은 고려 전문기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도 고려청자의 우수성이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 이처럼 동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고려청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도자기 기술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신비의 색깔과 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섬세하고 세련된 문양의 조화로 그 예술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청자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경부터라고 추정한다. 이 시기에는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어 왕권이 불안정하고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하였으나 장보고를 비롯한 신라인들이 해상 세력을 장악하여 삼국간의 문물교류와 사무역(私貿易)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중국 당나라의 진보된 도자기 제작 기술이 통일신라시대에 전래되어 청자가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때 궁금한 점은 고려의 중심인 수도 개경 주변에 수많은 고품질의 청자를 생산하는 대규모 청자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강진요가 어떻게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자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주장으로는 강진 주변의 점토 등 원료가 우수하고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부하며, 산의 기울기가 완만해서 가마를 묻기에 아주 적합한 지형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또한 용문천을 거쳐 강진만으로 이어지는 해로(海路)가 있어서 수송에 유리하다는 점도 거론되었다.

하지만 근래에 발굴 조사된 황해도 원산리요와 용인시 서리요 등을 비교해 보면 이들 지역이 조건이나 자연환경 등에서 강진요에 뒤질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소비 중심지인 수도에서 가까운 이들 요들이 제작관리나 유통에서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므로 강진청자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청자산업지가 된 것은 자연ㆍ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청자 품질의 차이가 컸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

개경 주변의 다른 요들이 벽돌로 만든 중국식 전축요에서 대규모 생산체제로 중국식 청자를 제작했던 것과는 달리 강진요들은 흙으로 만든 토축요에서 한국화된 소규모 생산체제로 한국식 청자를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이다.

그리고 색이 진하고 유약이 두껍고 불투명한 중국식 청자에 비해  투명하고 맑은 한국식 강진청자의 유약은 고려의 중심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한국청자가 중국청자와 다른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첫 걸음이 되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개경으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거리에 있던 강진청자가 중심지 요들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이기고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문화산업 요지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무엇이든 대규모화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면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멋을 찾아내고 아름다움을 발전시킨 우리 선조들은 바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오늘날로 비유하면 반도체 같은 초인류 히트 상품을 만들어서 세계시장에 수출한 강진청자는 지방화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중앙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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