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상부상조 잘해 농사 많이 지어도 불편함 없는 마을
[마을기행] 상부상조 잘해 농사 많이 지어도 불편함 없는 마을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07.15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칠량면 덕동마을

▲ 칠량면 덕동마을은 예전부터 주민들이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 마음이 넘치는 곳이다. 지금도 강진만을 앞에 두고 주민들이 서로 합심해 부모들을 모시고 살아가는 훈훈한 감동이 전해지는 곳이다.
하늘에서 퍼붓듯이 쏟아지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이다. 비갠 뒤 찾아온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논두렁을 정비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칠량면 소재지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마량방면으로 1㎞를 가면 월궁마을을 바로지나 우측으로 덕동마을로 향하는 마을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 진입로를 따라 0.7㎞를 지나면 백산이 감싸고 있는 덕동마을을 볼 수 있다.
 

▲ 마을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덕동마을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두 마을로 나누어진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처음 나타난 마을은 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어 큰 덕동이라고 부른다.

이어 마을회관에서 서남쪽으로 200여m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은 7가구가 살고 있어 작은 덕동이라고 부른다.

덕동의 지명은 덕을 불러오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덕동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는 간척지가 생기기 전인 지난 1980년대 마을의 지형이 곡식 등 물건을 담는 바구니 형국이었고 작은 덕동은 쌀을 이는데 쓰는 기구인 조리형국을 하고 있어 복을 불러왔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덕동마을의 역사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200여년전에 달성서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고 이후에 서매순(달성서씨 23대손)씨가 덕동으로 입향한 이후 가구가 늘어나 촌락이 형성 되었다.

현재 마을에는 전주이씨, 광산김씨, 곡부공씨, 달성서씨, 죽산안씨 등 27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덕동마을은 반농·반어마을로 마을주민들이 인근 갯벌에서 바지락, 낙지, 꼬막 등을 잡으며 많은 소득을 올렸으나 유치댐이 생긴 뒤로 육지 물 유입이 줄어들고 갯벌오염 등의 영향으로 바지락 채취량이 줄어들면서 주민들 소득도 크게 줄어 들었다.
 
현재 마을주민들은 벼농사에 의존하며 이외에 깨, 고추 등의 밭농사와 10여 농가에서 소 70여두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마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발길을 마을 안쪽으로 옮겼다. 마을회관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서 60년째 살고 있는 이순애(여·81)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씨 집에는 마을주민 5명이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마을자랑에 대해 부탁하자 이씨는"우리 마을은 서로 상부상조하고 있는 마을이라 예부터 인심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덕동마을 주민들은 영농철 못자리 작업을 할 때면 한사람도 빠짐없이 주민 전체가 모여 하루에 2~3가구씩 마을 전체 못자리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다.
 
또 인근 마을주민 대부분은 못자리 작업을 할 때면 인부를 고용해 일을 해오고 있으나 덕동마을만은 주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작업을 하다 보니 현재까지 인부를 사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덕동마을 주민들이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근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덕동마을에 살면 농사 백마지기를 지어도 편히 일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직도 들려오고 있다고 한다. 
 
덕동마을의 자랑은 주민들의 좋은 인심뿐만이 아니다. 마을주민들이 효성이 지극해 예부터 효부상을 받은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주민 이소근(67)씨는 "우리 마을 여자들은 전부 순박하고 성실해서 집과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며"힘든 농촌생활을 하면서도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효부상을 받은 여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씨 부인 박순이(여·58)씨는 10여년전에 백내장으로 양쪽 시력을 잃은 시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모셔 지난 3월에 칠량면장으로부터 효부상을 표창 받았다.

또 마을주민 정영애(여·53)씨도 홀로계신 시아버지를 10여년 넘게 지극정성으로 모셔 지난 1980년에 강진군수로부터 효부상을 받았고 지난 1997년 강진군수로부터 효부상을 받은 김장례(여·64)씨도 현재까지 40여년째 홀로계신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 속에서 덕동마을 주민들 서로가 합심해 살아가며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모습에 훈훈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옆에 있던 손점숙(여·56)씨가 덕동마을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인 백산 봉황대를 소개 해주겠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백산 봉황대는 동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내리 뻗힌 산등성으로 옛날 부엉이가 살면서 그 분비물로 바위가 하얗게 되었다고 하여 흰바위 산이란 뜻이다.
 
손씨와 함께 가파른 숨을 내쉬며 고졸한 오솔길 사이로 20여분을 걸어 백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99㎡(30여평)의 면적에 검은 기와로 이루어진 높이 3m 정도의 우산각이 세워져 있었다.
 
우산각에서는 칠량면 삼흥 저수지에서 봉황리 인근 바닷가로 흘러내리는 장계천이 한눈에 보였고 칠량면 장계리 마을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씨는" 마을주민들이 운동 삼아 봉황대에 올라와 바람도 쐬고 노래 한 자락도 부르면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며"봉황대에 올라 정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진다"고 말했다.
 
덕동마을 주민들은 순박한 인심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역대 마을이장으로는 안평준씨, 이창수씨, 안두승씨, 김경식씨, 서순배씨, 이오백씨, 공종열씨, 김광식씨, 이화용씨, 서달호씨 등이 있다.   
 

"농촌생활 힘들어도 서로 우애가 깊은 마을"

봉황대로 오르던 중 깨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김정단(60)씨를 만났다. 김씨는 덕동마을에서 40년째 거주하며 마을에서 이장을 맡고 있는 남편 서달호씨와 함께 마을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마을에 대해 묻자 김씨는 "우리 마을은 주민모두가 경조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며"경조사가 있을 경우 한사람도 빠짐없이 서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4~5년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벼농사와 함께 부업으로 인근 갯벌에서 바지락과 꼬막 등을 채취해 많은 소득을 올렸었다"며"유치댐이 들어서면서 갯벌을 통해 얻는 소득이 줄어들어 점점 생활이 힘들어 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갈수록 농촌생활은 힘들어 지고 있으나 마을주민들이 더욱 합심하고 잘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우애가 더 깊어졌다"며"현재 마을주민들은 이웃사촌을 떠나 한 가족이 되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묻자 김씨는"지금처럼 마을주민들이 서로 돕고 살며 우애 깊고 건강하게 사는게 가장 큰 바람이다"며"예전처럼 바지락과 꼬막 등이 많이 올라와 마을 주민들이 돈도 벌고 웃으며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