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마을어디서나 샘물 펑펑... 주민들도 다정다감
[마을기행]마을어디서나 샘물 펑펑... 주민들도 다정다감
  • 김응곤 기자
  • 승인 2009.06.03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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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대 마을형성, 주민들 효성도 가득

▲ 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정동마을은 15가구 50여명이 거주하는 소규모 마을이지만 주민들 모두 화합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한낮의 폭염은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초록물결을 이룬 어린모들이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여린 몸으로 이겨내며 풍년을 향한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다.

옴천면소재지에서 동북쪽 1㎞지점으로 화신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2㎞가다보면 정동마을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정류장 왼쪽 길로 200m를 지나면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큰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정동마을을 볼 수 있다.
 
정동마을은 다른 마을과 달리 마을입구에서부터 길이 여러갈래로 나뉘어진다. 마을입구에서 바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곳은 가구수가 많이 산다고 해서 큰똠이라 불리고 저수지에서 왼쪽길에 위치한 곳을 가구수가 적어 작은똠이라 한다.
 
이어 저수지를 지나 우측 방지골로 들어서 있는 곳은 안터라 부르며 이는 옛날에 안씨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해서 불러진 이름이다. 마을입구 바로 왼쪽에 자리잡은 산정물은 산이 좋고 물이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정동마을을 도착해 마을회관을 찾았다. 마을회관에서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말소리들이 들려나왔다. 회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4명의 마을주민들이 모여 막 삶은 국수를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을주민들에게 마을 소개를 부탁했다. 여러 주민들 중 이흠순(여·74)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정동마을은 우물 정(井)자에 마을 동(洞)이 붙여졌다"며 "마을 어느 곳을 파나 물이 잘나오고 샘물이 좋아 마을주민들이 물 걱정은 없이 산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을 뒷산에는 기우제봉이 있는데 이곳에 제단을 설치하고 가뭄때면 면 전체 행사로 옴천면민들이 이곳에서 비를 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는 정동마을에 항상 물이 풍부해서 옴천면민들이 가뭄때면 이곳을 찾아와 기우제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정동마을 입구에는 故 박유동씨 기념식수와 사장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정동마을의 역사는 15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흥안씨가 제일먼저 입촌하였고 다음으로 진안서씨가 전북 진안에서 이거해 입촌하였다. 현재 마을에는 장흥마씨, 김해 김씨, 밀양박씨등 15가구 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은 벼농사 위주로 생활하고 있으며 10여년전에는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에서 소를 250두 이상 사육하고 돼지 350두, 닭200두를 사육했지만 사료값이 오르고 시설비용에 어려움이 많아 현재는 축산업을 하는 가구가 거의 없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정동마을 어느 집이나 땅을 파면 샘물이 잘나오고 물맛도 좋아 지금도 병영면이나 옴천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와서 물을 떠간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는 강수량이 적어 가뭄이 심한 탓에 농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지만 다행히 정동마을에는 마을 입구에 정동제라는 큰 저수지가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자랑이 어디 있냐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정동마을의 자랑은 수려한 산수뿐만이 아니다. 마을주민들은 효성이 강해 예부터 부모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며 살았고 현재 마을주민 자녀들도 다들 효자라며 자랑이 이어졌다.
 
마을회관에 있던 윤막내(여·79)씨는 15년동안 홀로 지내며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도지사표창, 군수표창, 옴천면장표창등 3회에 걸쳐 효부상을 수상했다. 이어 옆에 있던 김언양(여·72)씨도 15년전에 장한어머니로써 군수표창을 수상했다.

마을주민들은 예부터 마을사람들이 효성이 강하다며 주위마을에서도 정동마을하면 효심이 가득한 마을이라고 했다.
 
장한어버이상을 수상했던 김씨는"지금도 타지에 나가 있는 아들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며 "자식 걱정 없이 사는 것만큼 제일 편안한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2007년도에 정비된 정동마을 공동우물이 마을안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마을입구에는 고 박유동씨 기념식수가 있는데 1970년 박씨가 마을경관을 위해 사장나무로 귀목나무를 심었는데 박씨가 작고한 뒤로 박씨 자녀들이 나무 옆에 기념비를 세우며 효성을 보였다고 한다.
 
예부터 화합하고 우애깊게 살아온 정동마을 주민들은 씨름과 사물놀이도 즐겼다고 한다. 마을주민 박갑훈(72)씨는 "어린시절 마을앞에 부산똠이라 불리는 공터와 저수지부근에 비가 오면 사토가 밀려와 모래사장이 자연스레 형성되곤 했는데 그곳에서 마을사람들이 씨름을 즐겨했다"며 "옆 마을주민들도 씨름팀을 만들어 정동마을로 찾아와 씨름판을 열었는데 정동마을주민들이 씨름을 상당히 잘해서 우승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정동마을주민 고 박석조씨는 워낙 씨름을 잘해서 옴천면외에도 타지역까지 원정을 다니며 명성을 떨쳤다.
 
이어 마을주민들은 옆 마을과 씨름경기를 할때면 꽹과리나 북을 치며 응원했고 자연스레 사물놀이도 즐기게 되면서 명절때면 옆 마을을 다니며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고 한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현실속에 정동마을 주민들의 우애깊고 환한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월의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마을 인물로는 대한 복장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한석조씨, 사무관직으로 철도청 인천역장을 역임한 손승진씨, 광주경찰서 경사로 근무한 마이남씨, 군청 과장으로 퇴직한 정성태씨, 서울 구청 계장으로 재직한 김연만씨, 서울 강남 도시열관리 사업소장으로 재직한 박승규씨, 부산세무서에 근무하는 박용남씨, 서울 양천구청에 근무하는 김원선씨등이 있다. 

 

 

▣인터뷰 - 정동마을 70년 토박이 김우민씨

"일한만큼 보람느끼는게 소망"

옴천면 노인당에서 다른 마을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김우민(72)씨를 만났다. 정동마을에서 70여년 넘게 살아온 김씨는 70대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산좋고 물좋은 마을에서 주민들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마을주민 수는 적어도 90세를 넘긴 어르신이 3명이나 살고 있을 정도로 장수마을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동마을은 현재까지 장애인이 한명도 없는 마을이고 6·25 한국전쟁때 참전했던 마을사람들은 전사자 없이 다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예부터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튼튼하고 건강해서 마을에 걱정거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 생활에 대해 김씨는"마을주민들은 각 농가에 따라 친환경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농사를 짓고 있다"며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것 없이 다들 부지런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학비료와 농약값은 계속 오르고 있지만 나락값은 지난해 보다 떨어졌다"며 "농촌인구수는 점점 줄어들고 농민들만 갈수록 힘들어 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김씨는"농촌사람들이야 늘 그렇듯, 일한 만큼 제 값 받으며보람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지금처럼 마을사람들이 우애 깊고 건강하게 잘 사는게 큰 바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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