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자장면이 먹고싶다
[편집국에서]자장면이 먹고싶다
  • 강진신문
  • 승인 2009.03.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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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편집국장>

우리집 식구들은 방학만 되면 영화를 보러 목포를 간다. 초등학생이 세 명이나 되다보니 그중 하나는 '영화보기' 방학숙제를 꼭 가지고 온다. 강진에서 목포까지는 승용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다.

오랜만에 대도시에 갔는데 영화만 달랑 한편 보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하당 신도심에 있는 순두부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인근 할인점에서 이것저것을 구입해 집에 돌아오면 캄캄한 밤이 되기 일쑤다. 영화 한 편을 보기위해 하루를 꼬박 보내는 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강진에는 영화관이 없다. 강진에 원래 영화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반에도 읍내에 있던 강진극장은 문화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번잡했던 곳이 바로 극장통이었다.

얼마전 독자로부터 옛 흑백사진첩을 발견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1958년도 강진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첩이였다. 사진첩 중에 가장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이 바로 강진극장 건물이었다.

50년대 한국 전쟁도 궂꾿이 버티어 내고, 60년대 기근과 70년대 문화적 혼란을 이겨 낸  강진극장은 90년대 초 문을 닫았다. 영화를 볼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말 강진의 인구는 12만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주민등록상 인구가 4만2천명에 불과하다. 실제 거주자는 3만명대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에서 60대 이상 노인인구가 30%를 넘어섰다. 문화상품 소비층이 극히 취약해 졌다.

문화 소비층의 감소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전개된다. 어느 마을에 자장면집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마을의 인구가 줄어들어해 손님이 감소하면 자장면집은 존폐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을 닫게되고, 문을 닫게 되면 그나마 마을의 자장면집을 이용하던 소수의 사람들 마져 자장면집이 있는 다른 마을로 떠나게 된다.

이같은 '자장면집 현상'은 농촌의 다양한 분야에서 쉴세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강진에서 모 인기가수의 공연을 마련한 적이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이 인기가수를 초청하는데 1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강진에서 이 가수를 초청하면 1천만원의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지역에 공연시설이 없어 무대와 조명, 음향비용이 추가로 청구되기 때문이다. 시설이 취약해서 주민들에게 매표를 하기도 어렵다.

이렇듯 왠만한 문화행사를 준비하려면 이런저런 추가 부담이 막대하고, 주최측은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이내 지치고 만다. 지역주민들이 문화를 접할 기회는 그런식으로 줄게 들게 된다. 농촌지역은 문화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광주에 가면 육교마다 넘치나는 공연 프랑카드를 보며 부러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도시와 농촌의 문화적 격조함은 대도시 육교위에서 선명히 그려지고 있었다. 

이같은 문화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시민단체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시민단체는 상당한 고급스러운 단체를 의미한다. 전문성과 조직력, 재정력을 갖추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촌에 쉴세 없이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능력있는 시민단체를 말한다.

광주 YMCA가 지난 2007년 9월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다산수련원을 위탁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그곳은 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위탁운영을 시작한지 2년째인 지난해 방문객 수가 1만5천명에 달한다. 올 새해 첫날에는 150여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잠을 자고 새해를 맞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YMCA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조직력 덕분이었다.

이런 단체들이 사그러든 농촌문화를 살리는데 첨병역할을 해야 한다. 척박한 문화의 땅에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트게해서, 아주작은 떡잎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양분을 공급하는 기능이다.

그 기능을 위해서는 물이 넘쳐야 한다. 현재 다산수련원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광주 YMCA역할이 수련원의 철사담장을 넘어 인근 보동마을로 이어져야 한다. 강진만 해안길을 따라 강진읍으로 이어지고 막덕산을 넘어 마을 구석구석으로 흘러 들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자. 각 읍· 면에는 젊은이들 있다. 농촌이 아무리 노령화가 진행됐다고 해서 젊은이들은 여전히 꿈틀대고 있다. 이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봤으면 어떨까 한다. 또 연중 2~3회 정도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기획했으면 좋겠다. 비용은 광주 YMCA도 좀 부담하고, 자치단체도 나눠서 짐을 지면 된다. 지역신문도 돈을 좀 내겠다.  

지역의 전문가를 육성해 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그들이 각 마을에서 광주 YMCA가 다산수련원에서 하는것과 같은 기능을 조금씩 확산시켜가면 척박한 농촌은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확신한다.


이글은 광주YMCA가 발행하는 회보집 '빛의 아들'에 실렸던 칼럼을 일부 수정해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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