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탐방]-금곡사
[종교탐방]-금곡사
  • 김영미 기자
  • 승인 2009.01.09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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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위가 나란히 솟아 다투는가 여겼는데 한 줄기 물 가운데로 흘러 성낸 마음 풀어주네
▲ 군동면 보은산 자락 금곡에 위치한 1400년의 세월을 간직한 금곡사 경내.

금곡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 93년 중창불사로 가람 면모 갖춰

강진읍에서 작천면으로 넘어가는 까치내재 고갯길을 따라 오르면 보은산 자락에 거대한 석문으로 둘러 싸여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금곡사가 천사백년의 세월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사찰로 오르는 초입을 지나면 길 양옆의 기암괴석 석문이 웅장한 모습으로 시선을 잡아끌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서 몇 발짝을 떼어 놓으면 삿갓하나에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유랑한 방랑시인 김삿갓이 까치내재를 넘다 금곡사 기암괴석 석문을 접하고 남겼다는 시 한 수가 시비에 담겨 세워져 있다.
 
雙岩竝起疑紛爭 / 一水中流解忿心 (두 바위가 나란히 솟아 다투는가 여겼는데 한 줄기 물 가운데로 흘러 성낸 마음 풀어주네)
 
▲ 어머님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범종각.
다시 발길을 옮겨 오르니 신라 선덕여왕 때(632~647) 밀봉대사가 창건하였다는 고찰이 보은산 자락에 고즈넉이 내려 앉아 찾는 이를 맞는다. 신라 말 밀봉스님이 창건하고 이 절을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름인 성문사(城門寺)라 했으며 나중에 금곡사라 개칭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곡사는 1592년(선조 25)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소실됐다.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폐사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듯 하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창되었고 1969년에는 김성활이 초가집으로 된 불당과 요사를 재건하였다.
 
이후 1984년 주지 혜선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태고종 사찰이 되었다. 현재의 금곡사는 도로가 개설되어 오르기 좋으나 그 옛날은 첩첩 산중에 자리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심으로 지난 84년 사찰 건물 중창이 추진됐다. 불자인 박기환씨가 본격적인 중창 불사를 일으켰다.

그때 금곡사를 관장하고 있던 주지 창신 스님과 화주보살 오윤남(군동면 내동마을)씨가 6여년 동안 적게는 십리(4㎞), 많게는 이십(8㎞)~삼십리(12㎞)를 걸어 작천, 군동, 칠량면등 마을을 다니며 시주를 받았다.
 
▲ 청자로 빚은 천분의 불상이 모셔진 천불전.

300여명의 불자들도 쌀, 대들보, 석가래, 기둥, 기와등을 시주해 지난 93년 봄에 시작된 대웅전이 1년만에 중창됐다. 다음해 94년 여름에는 천불전 중창이 시작되어 불자들이 대나무 밭의 대나무를 베어내고 돌을 골라내어 터를 만드는 작업을 갖고 3년 동안 한명 한명 시주를 받아 청자로 빚은 천분의 불상을 모시게 됐다.
 
95년에는 명부전이 중창되고, 이어 칠성각, 일주문들이 차례로 세워졌다. 이중 대웅전은 본래 사후에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무량수전이었으나 최근에 전각 이름을 바꾸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불등 삼세불을 모셨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지장도, 칠성도, 제석천룡도, 독성도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또한 금곡사는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초·중·고 학생들의 봄, 가을 소풍지로 이용되는 잊지 못할 추억이 어린 명소이기도 하다.
 
금곡사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 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인 것 같다. 

■인터뷰-금곡사 주지 보각스님

"금곡사 법향이 강진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길"

보각 주지스님은 "금곡사는 강진을 대표하는 사찰로 강진 사람이면 누구나 어릴적 소풍을 왔던 곳으로 향수가 깃든 곳이다"며 "이곳은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명절이면 찾아오고 보은산 우두봉 산행을 하면서 꼭 스쳐 지나가는 절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보각스님은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강진지역에 금곡사 계곡에서 법향이 흘러나가 강진이 발전하는 일들에 일익을 담당하길 바란다"며 "사찰이 열린 법당으로 언제든지 올라와 기도하고 참선하는 곳이 되어 불자와 관광객들이 주인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보각스님은 "신도들과 유서 깊은 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 가겠다"며 "방랑시인 김삿갓이 떠올렸던 시상을 되살려 벚꽃 축제를 한 번 개최해 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보각스님은 "내 종교를 존경 받으려면 남의 종교도 존경 할 줄 알아야 하고,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다"며 "서로 상생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불자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길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자랑거리-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금곡사에는 백제계통의 고려양식인 보물 829호로 지정된 금곡사삼층석탑이 유명하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으로 5m가 넘는 거대한 탑이다.
 
본래는 5층이었으나 현재는 삼층만 남아 있으며, 전체 높이는 5.4m이다. 형식면에서는 전형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새석의 우동마루등 일부에서 약간의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탑은 단층 기단위에 3층 탑신부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탑은 백제계통의 고려양식을 보이고 있는 귀중한 탑으로 전체가 기울고 일부 훼손되어 지난 1988년 6월 해체 복원되었다. 이때 3층 탑신상면의 사리공에서 크고 영롱한 진신사리 1과와 회백색 사리 32과가 발견되어 봉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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