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진의 자존심
[기고]강진의 자존심
  • 강진신문
  • 승인 2008.08.29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형문<귀농인·칠량면 한림>

오랫동안 외국에 살다가 1년 전 조국의 품에 다시 돌아와 남도답사1번지에 정착 귀농인 되어 살아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곳 강진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혹되어 머문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말해주듯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졌다.

또 여름이면 마을마다 정자나무 아래 모여앉아 한 해 농사를 주고받으며 넘치는 정으로 순박하게 농사만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구수한 이야기가 구부러진 허리와 잔주름을 펴지게 한다.

그리고, 강진에는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마량미항에 수산자원과 고금도를 잇는 대교가 개통되어 풍부한 어족을 당일 서울까지 직송하는 내일의 무한한 발전과 희망이 넘치는 글로벌시대에 앞장서고 있다.

더군다나 강진의 자존심인 청자는 우리나라 도요지의 원조인 곳이며 선인들이 살았다는 백련사에 동백 숲 길 따라 만덕산 기슭에 다산선생의 유적과 포근한 읍내 탑동산 자락에는 영란선생의 숨결이 살아 있는 강진의 매력을 분명히 내일의 희망을 솟아오르게 한다.

이번 제13회 청자문화제는 7년 연속 전국 최우수 축제라는 타이틀과 국내 최고의 문화관광축제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특히, 여름휴가객들을 유치하는데 성공했고, 우리나라 각처에 출향인들의 헌신적인 관심과 참여로 더욱 빛나 무사히 성료되었다.

무엇보다도 강진의 조용하고 차분함에 반한 관광객이나 외국인도 가족단위가 대부분으로 매력적인 곳임이 인식되었고, 태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강진 청자보물 1천점 특별전시와 일본, 중국, 프랑스까지 지구촌 도자기가 한자리 전시와 고려청자 천년의 신비에 화려한 부활로 강진의 자존심인 자산으로 남았으며 청자의 무한한 자태를 유감없이 뽐내 큰 관심을 갖는 국제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고려청자의 역사적 배경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의 전통적 단순 숭배 정신인 불교, 노장, 풍수도참 사상 등을 바탕으로 그 색과 기형조각 등 은은한 비취빛깔은 푸른색 유약의 광택으로 아름다운 비색이 오직 청자만이 간직한 비법으로 굽는 기술이 맑고, 밝고 은은한 색상에 연꽃문, 국화문, 당초문, 초화문 등 문양이 기하학적 서정을 내포해 낭만적이며 청빈한 생활을 염원하는 마음이 도공들의 독창성으로 잘 나타낸 장식기법으로 대대로 이어온 장인정신이 숨어있다. 그래서 고려청자의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금도 강진 땅에는 대구면 미산포구나 도암 망호포구, 강진읍 목리포구 등 옛 정취가 남아있고, 대구면과 칠량면에 있는 수백기의 가마터는 1900년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 유배시절 수십 명의 뛰어난 수제자(이강희, 이청, 윤창모, 황산 외) 이들 중에서도 "황산"을 많이 아꼈고 다산의 시풍을 계승하여 치원유고문집과 송시원시첩, 석재죽란, 견서여시 등 서첩들이 남아있다.

주자학만이 정학(正學)이라던 조선봉건 사회당시 선생은 근세조선의 인간정신은 어떻게 전개시켰는가 보여줬고, 농어민들의 고난을 읊었고, 조선정치의 개혁론을 시정 주장했으며 경제유포와 그 뜻을 목민심서로 나타냈다.

시인 김영랑 선생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장흥법원에 징역1년을 선고 받아 3개월 동안 모진 고문과 고초를 당하신 분으로 일제히 저항하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순수 서정시의 극치를 한국 시단에 남기신 거목이다.

이제 자랑스런 우리 강진을 이번 청자문화제를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반과 자존심을 키워나갈 것이다.

나는 산 좋고 물 좋은 이 곳 강진 땅 한자리에 묻힐 예행연습을 아내와 함께 조깅하며 조용히 살아가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