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다산(茶山), 추사(秋史) 그리고 황상(黃裳)
[다산로에서]다산(茶山), 추사(秋史) 그리고 황상(黃裳)
  • 강진신문
  • 승인 2008.08.01 1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희만<성화대 교수, 한국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열대야도 지속된다. 휴가철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떠나기가 쉽지 않다. 맛있는 음식도 먹기가 어렵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면 문제가 될까. 폭염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슬기롭게 넘길지 고민이 된다. 이것이 나만의 푸념일까.

예전에 사놓고 제대로 읽지 않았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완당전집(阮堂全集)』이다. 이 책은 추사(秋史) 사후 10여 년이 지난 1867년(고종 4)에 시고(詩藁)와 척독(尺牘) 두 종류의 문집으로 간행되고, 다음해 "김공(金公)의 문자가 흩어진 채 수합되지 않아서, 그 묻혀지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잔본들을 주워 모아" 5권 5책으로, 70여 년이 지난 후 10권 5책으로 그 후손이 정리한 것이다.

책의 내용이 방대한 편이다.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서독(書牘)이다. 인터넷 덕분에 편지글이 부쩍 줄었다고 하는데 이 글들을 보면서 옛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 목차를 찬찬히 살펴보면 눈에 익은 인명이 적잖게 보인다. 흥선대원군, 민태호, 조인영, 권돈인, 김병학, 이상적 등의 얼굴이 그들이다.

특히 다산(茶山), 초의(草衣) 그리고 황상(黃裳)에게 눈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편지글을 보면서 그 교류의 폭도 읽을 수 있다.

추사가 다산에게 보낸 편지는 예기(禮記)의 잡기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로 자신의 지식과 주장 등 다양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역시 조선의 석학다운 학식의 교환이 아닐 수 없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는 38통이나 되어 그 친분관계 자체를 알 수 있는 바, 일상사를 허물없이 풀어놓고 있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황상에게 보낸 글은 추사의 칠십 나이를 회고하면서 인생무상을 담담하게 적어가고 있다.

어느 날인가 한 일간지에 다산 정약용의 '마지막 친필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반가웠다. 그것은 다산이 마음으로 가장 아끼고 사랑한 황상에게 보낸 친필 편지 32통과 형 정약전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책자로 묶은 '다산여황상서간첩(茶山與黃裳書簡帖)'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추사와 다산을 통해 황상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묘한 감상이 일었다. 황상은 진솔하고 순박한 사람이었으며, 겉으로 꾸밀 줄 몰랐으며, 깊은 속내를 표현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황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 자료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확인해 보니 어떤 인물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다. 다산과 추사 그리고 초의의 글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후 황상의 일속산방(一粟山房)을 다산과 함께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 이후 전개되는 인연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다산이 세상을 떠나기 전 황상에게 써준 편지는 애틋한 마음을 보여준다. "제자들아, 내 부음을 들어도 오지 말고 곡은 한번만 해라"

무더위는 여름이다. 이 더위에도 우리나라의 대표 축제 가운데 하나인 '청자문화제' 준비로 모두가 부산하다. 휴가철 다양한 계획이 있을지라도 한 번 다녀갔으면 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고려청자의 혼과 장인의 정신을 현재에 계승하려는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산, 추사 그리고 황상의 하모니가 살아있는 우리 고장을 한 번 더 되새기고, 대내외에 알려서 그들의 영원한 우의(友誼)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