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진에서 보낸 농촌생활 1년
[기고]강진에서 보낸 농촌생활 1년
  • 강진신문
  • 승인 2008.07.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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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문<귀농인·칠량면 한림>

지상 마지막 환상의 낙원 남태평양 '피지'에서 이민생활 13년을 청산하고, 나의 혼백이나마 고국 땅에 묻고 싶어 하늘을 날아 무작정 귀국하였던 1년 전.

전국 도시와 해변을 두루 떠돌던 어느 날 해남 송지면 땅끝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거슬러 오던 때 차창 밖으로 펼쳐진 넓은 들녘과 수려한 산하 그리고 넓은 바다의 자연경관에 너무 매료되어 아! 여기가 어딘가? 싶어 곁에 분께 물어보니 '강진'땅이라 했다.

강진하면 일찍이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배지로 목민정신과 고려청자 도요지며 영랑선생의 시혼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문화유산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문림목향의 넉넉한 인심의 고장, 백련결사의 요람지 남도답사 1번지가 바로 여기가 아니던가?

나는 군청의 배려로 칠량 한림마을에 터전을 마련할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매일같이 집 뒤편 병풍같이 펼쳐진 산길 따라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고, 오후에는 농로길 따라 강진만 바다가 있는 방파제 길을 거닐거나 탁구와 바둑을 두기도 하고, 조용한 시간에는 글을 쓰며 농촌에 파묻혀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또 장날이면 동네 분들과 함께 읍내 장터에 나다니며 인생풍담을 들어주고, 일요일이면 칠량교회에 나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감사는 하느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지난 가을에는 황금빛 들녘에 누렇게 익은 벼를 추수할 무렵 농촌의 모자란 일손에 나의 작은 보탬이 되었고, 마을 분들은 너나없이 수확한 작물을 한아름씩 들고와 따뜻한 정을 나누곤 했다. 특히 산 넘어 현천마을 이장까지 찾아와 깊은 애정을 함께 나누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사계절이 뚜렷하며 축복받은 나라다.  그렇게도 노랗게 물들었던 가로변 은행잎들이며 지천에 피어난 코스모스가 어느새 초겨울 세찬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가지들마다 흩날리며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대지에 소북이 떨어져 쌓인다.

그러다가 어느덧 눈발이 내리던 날 꽁꽁 얼은 허허벌판 논둑에는 모진 추위에도 꼿꼿이 허리를 세우며 힘찬 생명력으로 돋아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진초록 보리이삭들이 시샘이나 하듯 파릇파릇하고, 길가 양지쪽 후미진 고랑 언덕바지에는 풀잎마다 맺힌 영롱한 아침이슬에 푸성귀가 자라며 새봄을 알리고 있다.

오랫동안 여름뿐이던 곳에서 살아 온 탓인지 고국에서 다시 보는 눈발이 흩날리는 농로 길을 아내와 손잡고 거닐어보는 발자국마다 내 고국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산하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새봄이 열리는 사오월이오니 겨우내 얼었던 마른 대지위에 가지들마다 파란새싹이 돋아나고, 논뚝 흙내음 황토길 따라 개울가 언저리에는 정겹게 휘 늘어진 노란개나리가 바람에 취해 나풀거리고, 지천에 피어난 산수유, 진분홍빛 철쭉, 유채화 그리고 연분홍색 살구, 매화, 배꽃에 이르기까지 온천지가 꽃 사태로 만사홍록으로 가득하다.

한 겨울 편히 쉬었던 농민들이 잠에서 깨인 듯 농사 채비에 한창이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탐진강 포구에는 고향 찾아 물길 따라 몰려드는 은어, 담수어 떼들이 쪽빛바다에서 봄 내향에 취해 놀고, 강변에 만개했던 벚꽃들이 눈처럼 흩날려 떨어지는 꽃 잔치가 마치 인생무상,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같구나!!

겨우내 자랐던 보리도 5월이 되니 다 베어나가고, 그 자리에는 벼 못자리가 현대식 기계로 심어지고 금년 농사도 풍년을 예고하듯 7월이 드니 뙤약볕이 내리 쬐인다. 고유가로 어려운 농민의 허리가 펼 날이 언제일까?

강진벌은 세세무궁토록 거룩하게 살다 가신 정약용선생의 고결한 숨결이 깃든 곳이다. 백련사는 만덕산 기슭 초당 가는 오솔길 따라 동백꽃의 군락지가 하늘을 뒤덮은 듯 해서 선인들이 살았나는 진수를 전해라도 주듯 알알이 붉게 피어있다.

청자골 축제는 연연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축제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며, 모란의 향기가 진동하는 서정의 거성 '김윤식'선생의 면면이 살아 숨쉬는 곳에서 60여년 만에 선생의 셋째 제자인 「김현철」중학교 시절 동창을 만나 더 더욱 감회가 새롭다.

이젠 난 강진에 매료된 귀농인이 되어 새새연연 보리피리 불며 남촌에 조용히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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