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복달임의 은어축제
[다산로에서]복달임의 은어축제
  • 강진신문
  • 승인 2008.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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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강진군문화재 연구소장>

축제가 열리는 군동면과 석교의 천변은 수자원이 풍부하여 읍내의 상수원이었다. 또 천년전에는 강진의 행정치소였으며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물을 담아두던 보(洑)를 막아 여름이면 냇물에서 놀이로 하던 물고기 잡이도 해왔다.

기능면으로 보면은 논밭을 갈아 농사짓는 일인 농경문화를 복희씨가 하던 대로 지금껏 이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식량의 자급과 지구가 더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행사날은 중복철이다. 옛 사람들이 복날이면 무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즐겨 먹던 고기붙이로 국을 끓여 먹거나 계절의 과일을 먹던 것처럼 해야겠다. 그리고 복(伏)이란 말은 후한의 임금인 화제(89-105)때 생겨 났으며 우리 말로는 「달치다」라고 하는데 그 뜻은 뜨거운 기운이 지나치도록 더워진다는 것이다.

「은어」는 수박의 향기가 있고 맛이 담백하여 모두가 좋아하며 글쟁이는 그 생김새로 보아 은구어(銀口魚) 또는 은조어(銀條魚)라 해 두었다.

좀더 알아보니 「몸길이가 20~30센티며 모양이 가늘고 짙다. 몸빛은 암녹황색 바탕에 배쪽으로 갈수록 담백색이고 눈의 위는 황색, 턱의 아래는 녹색 위는 백색이다. 어린 고기는 바다에서 지내고 이른봄에 강을 거슬러 올라와 급류에 산다」고 했다.

즉 본적지로 돌아오는 회귀성이며 강의 밑바닥에서 헤엄치며 살기에 잡기가 쉽지 않고 물밖에만 나오면 죽어 버려서 물가가 아니면 싱싱한 것 먹기가 어려웠다.

「석교」는 걸어다니던 때 강물에 돌다리를 놓아서 유래하고 대구면 정수사 스님이며 남한산성 쌓는 책임을 맡았던 천기대사의 출신지이다.

또 그곳은 태평양의 바닷물과 영암, 강진, 장흥 3개군의 육지물이 만나며 사인암부터는 바닥이 바위로 이어졌다.

그래서 사인암보, 어산보, 관선보가 생기게 되었으며 흐르는 물의 이름은 금천(錦川)또는 금강(錦江)이라 했다.

1923년에 엮은 강진군지에는 금강에 사는 물고기를 적었는데 은어, 황어, 농어, 금잉어, 가물치, 잉어 그 밖에 뜻을 모를 원도어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다 물의 정화작용을 하는 용하지(龍下池)와 합지(合池)도 있다고 하였으니 사람의 허파와 같다.

다음으로 행정치소는 1천년 전에 1만2천집을 거느리는 향이 한곳, 농업 종사자 거주지가 두곳, 광석을 캐거나 수공품을 만들던 곳이 여덟곳이었다. 군동에는 평덕(덕평)향, 수운(운수)부곡, 대곡소(大谷所)가 있었으니 모두가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강진에서 이름난 세곳의 보 중에 「어산보」는 고기어와 출생지 산을 써서 옛부터 물고기 생산지임을 알렸다.

훗날에는 「수원이 특별이 깊고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사람들의 목숨을 많이 살려 내기에 나라에서는 정3품에 해당된 벼슬을 내려 벼슬아치어 상줄상을 써서 어상보라 부른다」고 했다.

물을 가두는 보는 지역민의 소유와 관청의 소유로 나뉜다. 지역민의 소유는 그곳의 경작자가 봄과 가을에 고치고, 관청의 소유는 면 내의 건장한 남자들을 동원시켜서 허물어진 곳을 고치게 하였는데 원칙대로 경영이 되질 않아 지역민이 크게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복달임 행사는 계속하되 땀흘려 먹고 건강해지는 기능성 식품을 개발하고 온 군민이 꼭 다녀가게 할 꺼리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하려면 기능성 음식은 어린애와 어른 남 녀로 나누고 체질과 영양이 어우러지고 값이 부담되지 않을 것으로 하고, 꼭 다녀 가게할 꺼리는 무더위 제사 땅뺏기 놀이등 참여형 민속행사와 군동의 산에서 시작하는 가장 좋은 샘물로 갈증을 풀게 하며 주된 행사장 외에 매회 한 마을씩 향우와 함께 자연친화적인 행사를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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