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아버지가 화났다
어머니·아버지가 화났다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8.07.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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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례 할머니가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 사정
▲ 안강례 할머니(제일 우측)가 지난 9일 군청앞 광장에서 열린 '강진농민 행동의 날'집회에 마을 주민들과 참석해 현재 농촌의 이런저런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난 9일 강진읍 영랑로에서 열린 '강진농민 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한 안강례씨(73·강진읍 기룡마을)는 '데모'하는데는 처음으로 참석했다고 했다. 집회현장에 왜 나오셨느냐는 물음에 "못 살것다"고 대답했다.
 
안할머니는 영랑로 집회에 참석한데 이어 군청광장으로 옮겨서 열린 집회에도 따라와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듯  했다.
 
"비료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고, 농기계 사용료도 뛰어도 너무 뛰었다. 이래저래 계산을 해보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지난해에 비해 비료는 8천원에서 2만3천원으로, 농기계사용료는 7만5천원에서 12만원으로, 벼탈곡값은 7만원에서 13만원으로, 보일러기름값은 18만원에서 31만9천원으로 뛰어 올랐다"고 말했다.
 
안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그래도 좋은 세상이다고 살아왔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가만있다가는 죽겠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마을 방송을 듣고 옆집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고 했다.
 
안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20마지기 정도 짓고 있다. 농협의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밭작물을 팔아서 이리저리 막고, 수매해서 돈을 돌리면 그런대로 농촌에서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생활이 너무 쪼들리고 있다. 보통 가을에 20마지기 논에서 벼 수확을 하면 400만~500만원이 남지만 이런 저런 외상값 갚고 비용지출하면 한 푼이라도 구경 할 수 있을지 모를 지경이다.
 
안강례 할머니는 농민행동의 날 집회가 오전 10시부터 열렸으나 11시에야 도착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기름값이 오른 후 군내버스 운행이 줄어들어 10시 30분차를 타고 나왔다는 것이다.
 
안 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같은 마을의 할머니는 도시의 자식들이 더 걱정이었다. 며칠 전 전화가 왔는데 불경기가 심해서 생활이 어렵다는 소리를 했다.
 
자녀분들이 용돈은 부쳐 오느냐는 물음에 "내가 보내줘야 할 판인데 이렇게 어려워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9일 열린 강진농민 행동의 날 집회에는 이렇듯 평소에 단체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일반 농민들의 모습이 많이 띄었다.
 
이날 마을 주민 20여명과 함께 집회에 나온 마량 연동마을 김원진(53)이장도 집회에는 처음 참석해 본 경우였다. 함께 온 주민들도 대부분 그랬다.
 
김원진 이장은 "마을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이렇게 더운 날 버스타고 강진읍까지 나왔겠느냐"고 한숨지었다.
 
"주민들이 오랜만에 함께 읍내에 가면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들어오곤 했는데 집회가 끝나자 바로 집으로 가자고들 해요. 요즘 주민들 기분이 모두 그렇습니다"
 
오후 늦게 다시 통화를 한 김원진 이장은 마을의 분위기가 막걸리 한잔 함께 나누기도 편치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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