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민사배심조정]"진작 화해했으면 될 일인디..."
[첫 민사배심조정]"진작 화해했으면 될 일인디..."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8.07.04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심조정위원들, 이웃간 30년 앙금 해소
방청객들 "새로운 조정문화로 정착되길"

▲ 3일 오후 강진읍사무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사배심조정에서 소송당사자들이 배심원들과 판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길을 막아 경운기 운행을 방해한 것도 이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겠습니다"

지난 3일 강진읍사무소 3층 대회의실. 전국에서 최초로 민사배심조정제도에 의한 조정이 열리면서 다소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사배심조정제도란 일반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합의안을 개진하고 원고와 피고가 이를 수용하면 사건을 재판없이 해결하는 것이다.

이날 배심조정에 오른 사건은 강진읍에서 이웃간에 사는 두 주민이 30여년 동안 쌓아 온 앙금이 법정싸움으로 비화된 소송이었다.

대회의실 앞쪽 우측에는 원고인 A씨와 피고인 B씨가 안고 건너편에는 장흥지원 조정전담판사인 임수희 판사가 자리를 했다. 구회근 법원장은 일반인석에 앉아 조정과정을 지켜봤다.

잠시후 중간에 마련된 자리에 배심원들이 착석했다. 최근 공개모집을 통해 선출한 120여명의 배심원들중에 17명을 무작위로 뽑은 사람들이었다.

임수희 판사가 배심조정위원단 확정 절차를 밟은 후 바로 조정을 진행했다. 판사가 사건의 개요를 잠시 설명했다.

내용은 이랬다. A씨와 B씨는 한마을 이웃집 사이다. 그런데 B씨가 A씨의 땅을 침범해서 담을 쌓아 수십년 동안 살고 있다. 그래서 A씨는 보상을 해주든지 건물을 철거하든지 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이 현장을 검증해 보았다. 그런데 B씨가 침범한 땅의 규모가 두 평 정도에 불과했다.

알고보니 두 사람은 이웃집에 살면서 수십년 동안 쌓아온 앙금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소한 감정싸움 때문에 감정이 악화일로였다.

▲ 임수희 판사(제일 오른쪽 여성)가 배심원들에게 조정해야할 사건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배심조정위원들의 임무는 두 사람에게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0여분 정도 휴정을 가진 후 배심조정위원들이 협의안을 내놓았다.

배심 조정위원들이 내린 결론은 '땅을 무단으로 사용한 B씨는 A씨에게 측량비와 소송비를 포함해 100만원을 지급하고 그동안 쌓아 온 감정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대신 A씨는 B씨가 담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경운기 통행등을 막아서도 안된다고 했다. 모든 앙금풀고 화해를 해서 평생 후해없는 이웃사촌이 되라는 호소도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A씨는 아무래도 100만원은 적다는 눈치였다. 임희수 판사가 말했다.

"돈만 보면 적은 것 같지만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그게 큰 돈의 가치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B씨가 A씨에게 100만원이 많다고 생각할 정도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시지요"

B씨가 자의반 타의반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더니 어느덧 결심을 하는 듯 했다.

"이렇게 배심원 분들도 많이 게시고 판사님들도 나오시고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옛날에 했던일 진짜 미안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절대 안그랄 랍니다. 미안하게 됐소"

B씨가 A씨에게 손을 건넸다. 100만원이 적어서 금방이라도 조정장을 뛰처나갈 것처럼 앉자 있던 A씨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진작 사과했으면 되부렀을 일인디..."

두 사람은 언제그랬냐는 듯 서로 손을 잡고 배심원들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30년 동안 벽을 쌓고 지내온 두 사람이 배심원들의 조정으로 화해를 하게 된 것이다.

장흥지원 관계자는 "매년 두차 례 정도 배심조정위원들의 배심조정을 할 계획이다"며 "단계적으로 문제점을 해소해 가면서 새로운 조정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심조정을 지켜본 한 방청객은 "반전이 거듭되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며 "배심조정이 주민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