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마을이발관을 운영하는 송산이발관 서영훈씨
2대째 마을이발관을 운영하는 송산이발관 서영훈씨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7.02.08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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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지켜온 가위손,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을 위해 오늘도 영업중..

칠량면 송산마을의 한 골목길에 파랑, 빨강, 흰색의 선이 함께 돌아가는 이발관 영업등이 켜져 있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발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인 서영훈(65)씨가 2대째 이발업에 종사하고 있다.

칠량면소재지에서 이발관을 운영했던 부친의 어깨 너머로 이발기술을 배운 서씨가 송산이발관을 연 지도 4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공짜로 마을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던 부친의 권유로 17살 때부터 가위를 잡기 시작한 서씨는 6개월 남짓의 외지생활을 제외하곤 줄곧 송산이발관을 지켜왔다.

서씨가 현재의 이발관 위치로 옮겨온 건 지난 81년. 태풍 애그니스 때문에 온 마을이 물난리를 겪은 후 이발관을 새로 지어 이사했다. 2평 남짓의 이발관 내부는 그대로 세월의 흐름이 멈춘 듯한 모습이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이발용품은 수십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서씨가 가장 아끼는 이발가위는 광복 직후인 46년에 제작된 골동품에 속한다. 이발의자, 헤어드라이어, 면도기, 머리빗 등도 서씨가 사용해온 지 족히 20년을 넘었다. 호화스러움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지만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정겨움이 곳곳에 배어있다.

송산이발관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 인근 구로마을에서부터 군동면, 마량면에서까지 최소 20년 이상의 인연을 맺어온 손님들이 찾아오지만 하루 1~2명을 넘지 않는다. 40년 넘게 송산이발관을 애용하는 주민도 있다.

부친에게 배운 이발업을 천직으로 여겨왔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때 송산이발관을 찾는 단골만 350여명이 이르렀지만 현재는 80여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래서 서씨는 목수로 나섰다. 손님이 없는 시간 동안 틈틈이 평상을 만들었던 일이 계기가 됐다.

서씨의 솜씨를 본 주민들이 일거리를 맡겨오면서 이발관을 비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서씨는 송산이발관을 잊지 않고 찾는 단골들을 위해 가위를 놓지 않을 생각이다. 송산이발관이 문을 닫으면 강진읍이나 칠량면으로 가서 이발해야 하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서씨는 “돈벌이로만 생각했다면 40년 넘게 송산이발관을 지켜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단골손님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머리를 손질해주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한편 관내에서 영업하는 이발관 37개 업소 중 6개 마을이발관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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