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시]눈 내리는 강진만 - 고니를 찾아서
[독자 시]눈 내리는 강진만 - 고니를 찾아서
  • 강진신문
  • 승인 2007.01.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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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강진읍 출신. 현재 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 교사>

카자흐스탄에서 비행기 타고 온
여우털 모자만 믿고
고니를 찾아서
눈발이 달려드는 강진만을 걷는다

젊은 날 이 길을 걸으면서
푸른 제복을 입은 지상의 갈대들과
밤하늘 별들 중 누가 더 많을까,
생각했다
 
지상의 갈대는 아무리 많아도 유한한데
밤하늘의 별은 무한하지 않는가,
별들의 어깨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이 무수할 거라고
결론지었다

혁명을 꿈꾸던
젊은 날도 사라진 지 오래인 갈대들은
눈발을 털어내느라 분주한데
한 무리의 고니들이 바다에 떠 있다

제우스에게 몸을 빌려준 고니,
내가 고니를 찾아 나선 것은 
레다를 겁탈할 기회를 제우스에게 준
고니를 추궁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나의 또 다른 레다를 유혹하기 위하여
완벽한 고니의 몸을
한 차례 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의 간절한 바램에도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고니 떼,
눈발은 혁명군처럼 내 몸에 뛰어들고
바다에도 뛰어든다

고니 도래지인 강진만,
시치미를 떼고 있는 저 고니들은
밤이면 갯마을 사람들의
잠자리를 궁을궁을 파고든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바고처럼
밥그릇과 시집 사이를 맴도는 내게
저 고니들은 무얼 가르치려고
물이 나간 뒤에도
그 자리에 부동의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가

* 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이톨리아의 왕 테스티오스와 에우리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가 되었으나,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고니로 변신한 제우스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약력: 19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1993년 시집 까마귀
      2003년 시집 샤롯데모텔에서 달과 자고 싶다
             시집 기념사진      
      2004년 번역서 즐거운 생태학 교실
             시집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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