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잡는 외상 카드
소도 잡는 외상 카드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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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서울)영동농장 회장, 재단법인 용복장학회 이사장
`외상이면소도 잡는다'는 속담이 요즘처럼 실감날 때가 없다.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신용카드 관련 사고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경제 능력이 없는 대학생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의 카드 빚을 지고, 그것을 갚기 위해 아까운 청춘이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여대생이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 윤락가에 몸을 던지는가 하면 대학생 자녀의 카드 빚 때문에 부모가 평생 피땀 흘려 장만한 집을 팔기도 한다. 그뿐인가. 도둑·강도질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카드빚을 갚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이쯤이면 외상으로 잡아먹은 것이 `소' 정도가 아니다. 사회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혀 아예 사회 진출의 길이 막혀 버렸으니 자기 인생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잡아먹은 셈이요, 나아가 부모 형제의 인생 전부를 잡아먹은 꼴이 아닌가 말이다.

지나친 카드 사용으로 신세를 망치는 사람이 비단 대학생만은 아니다.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들 중에도 수입을 생각하지 않고 우선 쓰기 편한 맛에 무계획적으로 카드를 남용하여 곤란 지경에 빠진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결국은 직장 생활이 어려워지고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는가 하면 가정 파탄이라는 최악의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쯤 되면 신용카드는 언제 개인의 삶을 파괴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신용불량자 30만명을 구제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참으로 한심한 정책이오 정치가 아닌가! 정부가 연례 행사처럼 "신용불량자" 사면을 해온 것이 오히려 "도덕적 해이" "모랄해저드"를 부추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결국 모든 국민을 범죄인으로 만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카드사들에 묻고 싶다. 카드 발급을 권하거나 사용 한도를 올릴 때 가입자의 수입이나 능력을 꼼꼼히 따져 보았는지, 또 무턱대고 한도를 올렸다가 가입자가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할 때 그 부실 채권을 어떻게 해결할 심산이었는지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갈 때까지 가서 카드사의 부실이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지고 전체 경제에 큰 부담이 되면, 과거 금융 부실을 해결할 때처럼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구제할 것이라는 배짱이나 아니었는지?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우리 정부에게도 나는 과연 경제 정책 수립의 원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정한 법률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영위되는 것이다. 카드에 대한 정책만 하더라도 전체 경제 수준과 국민의 의식 수준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신용 정착을 위한 카드 사용을 권장하되 능력의 한계를 넘지 않는 절제를 담보로 하는 정책을 수립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20여년전(1981년) 나는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신청했다가 발급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농장을 하고 있던 터라 자랑같지만 백만장자 소리를 들으며 실제로 미국은행에 백만 불이 넘는 예금이 있었고, 사우디 아라비아 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American Express Gold Card)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은행거래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카드를 발급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매우 불쾌했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미국이 라는 나라의 철저함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토록 신용카드"Credit Card"는 신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을 때 발급하는 것이 원칙일진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아무런 직업도, 수입도 없는 청소년들 에게까지도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해놓고 신용불량자들을 양산시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이것이 은행, 대기업, 나아가서는 정부당국자들의 책임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 만약 우리 나라의 카드 제도가 미국과 같았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많은 카드가 발급되었겠으며 천문학적인 액수의 카드 연체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겠는가?

사실 신용카드는 여러 모로 편리한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신용카드가 널리 보급된 것도 사실이고 또 현금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 불편과 위험 부담을 깨끗이 해결할 수 있는 고마운 것이기도 하다.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신용카드 사고들을 보면 그것은 신용(信用)카드가 아니라 외상(外上)카드요 부채(負債)카드이며 나아가서는 파멸(破滅)카드 로 전락한 느낌이다.

더구나 그것이 법이 허용한 테두리 안에서 영업하는 제도 금융권에서 조장한 것이라는 사실에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각 개인이 하루 빨리 거품 소비, 충동 소비에서 벗어나 자기 능력에 맞추어 생활하는 건실한 습관을 익혀야 하는 것과 동시에 전 국민을 빚쟁이로 몰고 가는 정부 정책도 개선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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