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사리용기의 연구
청자 사리용기의 연구
  • 강진신문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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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욱(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사리용기는 석가여래와 선사들의 유골을 다비(茶毘)한 후 발생하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용기이다. 이들은 사찰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불탑과 부도(浮屠) 등에 안치된다. 따라서 매우 신성한 용기로 가장 우수한 재료와 뛰어난 기술을 구사하여 장엄미를 갖추기 때문에 당대의 문화적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또한 사리는 석가여래를 상징하기 때문에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는 사리 신앙이 발달되어 탑과 사리용기 제작 많은 정성을 들였다.
이들은 문헌 기록 또는 탑지와 주인공 등을 통해 조성 연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탑 연구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출토되는 미술품을 연구하는데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훼손의 정도에 따라 개보수를 실시하여 후대에 추가되는 유물도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동시에 필요하다.
사리용기의 재질은 금을 비롯하여 은, 동, 금은, 아연, 도금, 유리, 자기, 목재, 석재, 옥 등 매우 다양하다. 석재는 납석을 옥은 수정, 유리는 녹유리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며 아연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금속과 유리는 대부분 사리용기에 사용하기 위해 전용으로 제작되고 있으나 청자를 비롯한 자기는 주로 일반적인 기종을 사리용기로 사용하였다. 사리용기는 뚜껑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보편적 양식이며 전각형과 탑형, 육각당형 등 매우 다양하다. 이중 석관형과 석곽형은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며 주자형은 일본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금속제와 유리제 사리용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가 있으나 자기로 만든 사리용기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검토가 없었다. 자기는 황룡사 구층목탑의 예처럼 신라통일기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사용하였는데, 청자 제작이 발달하는 고려시대에 타 사리 용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청자는 비색청자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미적 가치와 조형적 예술성이 매우 높은 그릇이다. 따라서 종교적 장엄미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용기로 청자가 선택된 것이다. 그리고 청자 사리용기는 현재까지 고려시대 탑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청자를 비롯한 자기로 만든 사리용기의 전통은 고려 청자에 이어 조선시대의 분청자와 백자에 전승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사리용기는 지역과 시대, 인연, 소의경전, 재질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다. 고려시대는 청자의 발달로 향완과 정병(淨甁) 등 매우 많은 청자가 불교 장엄물로 장식되었다.
청자 사리용기는 뚜껑이 있는 합 형태가 대부분으로 사리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기타 특수한 유형이 있다. 1유형과 2유형은 10~11세기의 순청자로 제작되었으며 3유형과 4유형은 12세기 이후의 상감청자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1․2유형에서 3․4유형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3․4유형은 사리용기의 가장 보편적 기형으로 조선시대 분청자와 백자에도 계승되고 있다. 기타 유형은 14세기에만 확인되며 각 일례만 알려져 있다.
이들은 청자 사리용기가 특별히 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 문양만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양은 대부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어 불교 이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어 이를 반영하는 보편적 문양의 그릇을 사리용기로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청자 사리용기의 기능은 대부분 내부에 내용물이 담겨져 있어 외사리기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밀량 영원사 출토 일괄 청자는 내용물을 알 수 없어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으나 장엄구 역할을 위해 매납(埋納)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사리용기의 출토 지역은 강원도 2, 경기도 2, 경상도 3, 전라도 5, 충청도 1곳 등 모두 13곳이 현재까지 알려져 있다. 특히 전남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많은 5곳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청자 제작이 발달하였던 강진과 인접한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청자 사리용기의 탑내출토 위치는 9곳이 확인되는데 1층 탑신과 관련된 곳이 5곳으로 가장 많다.
고려시대는 청자의 비약적 발달로 청자가 사리용기로 매우 많이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알려진 예는 많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보다 많은 조사가 진행된다면 고려시대 사리용기와 사리장치 등에 대한 연구가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자 편년을 연구하는데 매우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청자 사리용기에 대한 많은 조사와 연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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