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금릉산악회 시산제를 맞아..
[독자투고]금릉산악회 시산제를 맞아..
  • 강진신문
  • 승인 2006.03.0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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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철(금릉산악회 회원)

회원들은 분담된 역할 수행에 분주하다. 일사분란(一絲不亂), 바로 그것이다. 항상 위험성이 상존하는 산행에서 완벽한 임무 수행은 전체 회원을 배려하는 의무의 실천이다. 2006년 시산제. 오늘은 그 일년을 위한 첫걸음이다.

60년 만에 처음이라는 대설의 흔적이 겨울분위기를 낳고 있다. 잔설 진 옥녀봉은 송곳같은 첨예함으로 깔딱고개다. 산행 시작부터 산 타는 기분이다. 배낭에는 작은 물병 하나. 어느 고승이 말한 ‘무소유’의 체험이랄까.

자잘한 봉우리를 몇 차례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덧 깃대봉이다. 백련사 쪽에서 제물을 지고 발빠르게 먼저 오른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짐을 운반한 피로함도 숨긴 채 본대를 영접하는 산 사나이들의 늠연(凜然)함이여? ? ?! 산악인의 살신성인이 그림 같다.

2006년 금릉산악회 시산제.

품위 있는 형식은 집단의 의식을 합일한다. 돼지머리, 떡, 생선, 과일, 전, 막걸리 등 조립식 제상 위에 각종 제수가 놓이고 부족한 제기는 임기로 급조된다. 문제군 초대회장님께서 제물의 위치를 바로잡는 등 제의 절차를 집례하고, 진설이 완료되자 집사는 축관이 되어 천지신명께 고하는 시산축문을 낭송한다. 

시산축문. 실로 명문이다. 만덕산 깃대봉에 성스러운 엄숙함이 만만하다.  선대들이 지은 여느 비문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그 내용을 서서히 음미하면 점강법인 듯 하다가 의미의 고조를 보면 이내 점층법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로부터 백두대간을 흘러내리다 남해 굽어보는 만덕산 깃대봉까지 삼라만상을 아우른 명언이고 명구다. 속 깊은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다가는 휘감겨 뒤척이는 급류로 휘몰아치다, 때로는 성스럽고 고결한 성자의 성음(聖音)으로 산정(山頂)을 사로잡는다. 

 오늘따라 강승석 회장님의 산제에 임하는 자세가 더없이 진지하다. 제관들에 의해 초헌, 아헌, 종헌이 이루어질 때마다 산정의 조악함을 무릅쓰고 회원들은 재배(再拜)의  예를 다한다. 경술년 한 해도 무사한 산행이 되어달라고. 그 진지한 기도에 산바람마저도 부동의 예를 보인다.

제의(祭儀)에서 음복의 풍요로움이 빠진다면 그 의미는 크게 반감할 것이다. 정갈하게 준비된 주안은 넉넉하다. 지금부터는 나눔의 시간이다. 탐진강 흐르듯 마음과 마음이 서로의 가슴으로 흐른다. 그 위에 잔은 철철 우정으로 넘친다. 산사람들의 의리와 신뢰 그리고 우정이 만덕산 깃대봉을 울린다.

품위 있는 격식과 정나눔으로 시산제를 마치고 이제는 하산길이다. 등산은 곧 진리다. 음양의 이치가 엄존하는 철학이다. 오를 때의 목차오름이 내리막에는 아래로 곤두박질이다. 그래, 주차장에 서면 그때는 가슴으로 평온해지리라. 정체됐던 기혈이 뚫리고 육과 신은 중용의 덕으로 풍요해지리라.

시산제 제의(祭儀)에서 맛본 성스러움과 우정처럼, 2006년 한해도 ‘금릉산악회’의 산행에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하길 산정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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