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작천면 삼당리 하당마을
[마을기행] 작천면 삼당리 하당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6.02.16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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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비가 아침나절부터 촉촉이 내린다. 기습적인 폭설로 수많은 주민들을 실의에 빠지게 했던 이번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봄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물기를 잔득 머금은 운무가 자욱한 까치내재를 넘어 찾아간 곳은 작천면 삼당리 하당마을.  작천교를 경계로 면소재지에 인접한 하당마을은 829호 지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40여호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예부터 부촌으로 명성이 높았던 하당마을은 넓은 평야지대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농경지가 풍부한 작천에서도 가장 넓은 경지면적을 가지고 있다. 마을 주변에 넓은 옥답이 펼쳐져 주민들은 미맥 위주의 농사를 유지해오고 있다.

밤이 산에서 굴러 내려와 바구니로 들어오는 형국이라 하여 예전 마을의 이름은 산율로 일컬어졌으며 조선 말기에 현재의 지명인 하당으로 개칭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90년 출향인들의 성금과 주민들의 모금으로 지어진 우산각은 마을의 옛 이름인 산율을 따서 율정이라 이름 지어졌다. 현재까지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는 율정 앞에는 마을의 내력을 적은 높이 2m, 폭 1m의 선양비가 남아 있다.

최초 인동장씨가 하당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 현재 100여명의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미맥 위주의 농경을 위주로 생활해온 마을답게 농경지에 붙여진 지명이 많다.

마을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는 의미로 불리는 번들, 예전부터 돌이 많아 독밭으로 불리다가 경지정리로 논으로 바뀐 독바지, 토질이 척박하고 농사짓기 어려운 천수답이었으나 옥답으로 경지정리된 초대기, 인동장씨가 마을을 이루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장수보 밑에 대로 엮은 새끼줄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았던 데서 유래한 마을 앞 들녘인 씨기들 등이 주민들 사이에 구전된다. 

하당마을 주위를 따라 흘러가는 금강천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성전 월출산에서 시작한 물줄기와 성전 밤재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예전 하당다리라고 불렸던 작천교에서 합쳐져 병영 들녘을 지나 탐진강으로 흘러간다.

예로부터 월출산에서 내려온 물은 찬 기운을 가졌다고 하여 숫물이라고 전해지며 성전 밤재에서 흘러온 물은 따뜻한 기온을 품었다고 해 암물이라고 했다. 따라서 숫물과 암물이 합쳐진 작천교는 길한 장소로 여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부터 마을에 아이를 못 낳는 집이 없었으며 매년 정월 보름이면 작천교 밑을 흐르는 금강천 물로 밥을 지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송영배(66)이장으로부터 마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송이장은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 굶는 일은 없다고 할 정도로 부촌이면서 훈훈한 인심을 가진 곳”이라며 “미맥 위주의 농사만을 고집하지 않고 국화 등 특화작물로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당마을에서는 현재 13농가에서 4㏊면적에 국화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 91년부터 키우기 시작한 국화는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대부분 서울 화훼시장으로 팔려나간다. 15년 동안 주민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키워낸 국화는 하당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국화재배와 미맥농사를 병행하는 농가가 많은 하당마을은 인근 마을보다 젊은 층이 많은 편. 50대 이하의 주민들이 20명에 이를 정도다. 미맥농사와 국화재배로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고향을 지켜가고 있다.

작천교 부근에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는 노송이 외롭게 서있다. 이곳에 3그루의 노송이 있었지만 지난 74년 제방을 막으면서 두 그루는 베어지고 한 그루만이 남게 됐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추석이면 그네를 뛰기도 했고 정월이면 농악놀이를 하는 장소로 이용됐지만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언제나 신록을 유지하던 노송이 갈수록 쇠약해져가는 모습에 주민들은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하당마을 주민들은 올해 소망이 있다. 마을 주변을 흐르는 금강천이 조속히 정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당마을은 여름이면 큰비로 금강천이 범람해 인근 농경지가 수몰되는 수해를 해마다 입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금강천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작천교 아래의 하천을 정비하고 인근 부흥교의 높이를 올려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부흥교 아래 설치된 한갑보의 수문을 개조해서 매년 여름마다 반복되는 수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하당마을 출신으로는 초대 강진군 의회 의원을 지낸 김재남씨, 해남 황산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하는 김재선씨,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김일현씨, 전남도청에서 재직하는 김현진씨, 서울에서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는 김용두씨, 전남도청에서 근무하는 김남용씨, 작천노인당장을 맡고 있는 송원식씨 등이 있다.

또 지난 2001년 마을회관 신축을 기념해서 세운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자작시를 남겼으며 광주에서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하는 장생주씨도 하당마을 출신이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김문심(여·62)씨는 집 마당에 깔 요량으로 구입해온 잡석을 옮기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성전면 도림리에서 시집온 김씨는 “마을로 시집온 40년 전에는 60여호 3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이었다”며 “인심이 좋아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잘 살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이 깊은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보유한 농경지가 많아 예로부터 부촌으로 이름난 곳”이라며 “넉넉하지 않지만 아직까지 돈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없을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음력 정월이면 주민들이 한데 모여 농악을 즐기며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를 가졌다”며 “풍물을 잘 하시던 마을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새로 배우는 주민들도 없어 정월에 하던 마을 행사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종갓집으로 시집와 설 명절이면 닷새 동안 손님을 맞을 정도로 집안이 붐볐다”며 “요즘에는 가까운 친인척만이 찾아올 정도여서 명절 분위기가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9천평 농사를 짓는다는 김씨는 “지난해 공공비축비와 농협 자체수매, 개인상인을 통해 수확한 쌀을 대부분 판매했다”며 “상인에게 판매한 대금을 두달 넘도록 받지 못해 애태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3남1녀를 둔 김씨는 “쌀값 하락 등으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지만 자식들에게 식량이라도 보태주는 재미로 유지하고 있다”며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이 올해의 작은 소망”이라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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