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호)마을기행-군동면 풍동리 벽송마을(91)
(207호)마을기행-군동면 풍동리 벽송마을(91)
  • 김철 기자
  • 승인 2002.11.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의 풍성함을 뒤로 초겨울의 매서워진 날씨는 마음시린 주민들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보리농사를 준비하거나 시설하우스를 서두르는 농민들의 모습에는 예전처럼 밝은 모습만은 아니다.

장흥과 경계해 강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는 군동면 풍동리. 이곳에서 마을 안길을 경계로 어우러진 마을들속에 찾아간 곳은 벽송(碧松)마을.

장흥방면으로 가다 좌측으로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3개의 마을이 나타난다. 풍동3리 라고 불리는 이곳은 우측으로 풍동마을이 위치해 있고 좌측으로 봉산마을, 풍동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맨위에 자리한곳이 벽송마을이다. 인근 풍동마을과 명암마을등에 자리한 고인돌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것으로 추정되고 주변에 산과 강이 있어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청주김씨와 탐진최씨가 마을에 처음 입촌한 것으로 알려지는 벽송마을은 현재는 해주최씨와 남평문씨등이 이주해와 20여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풍동3리는 마을의 전체를 기러기에 비유하고 벽송마을은 기러기의 몸통에 해당된다.

마을의 뒷등에 푸른 소나무가 울창해 이름지어진 벽송마을은 깃대봉의 중심으로 마을의 역사가 구전되어오고 있다. 봉산마을과 경계가 되는 가장골에는 마을사람이 죽으면 가매장을 해두던곳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곳에서 시묘살이를 한후 이장을 했다는 곳이다. 지금은 대부분 밭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골짜기의 모습은 남아있다.

인근 봉산마을의 어귀에 놓인 개미와 닮아 명명된 개미등, 명암마을 뒷등으로 이어지는 미륵골은 예전 불상이 놓여있어 이름지어졌다. 성자라고 불리우는 스님이 절을 세우고 있었다는 성자골, 성자스님이 도술을 부려 하루아침에 호미로 골짜기를 만들었다는 구전도 전해내려온다.

마을의 뒤편에 위치한 350m높이의 깃대봉은 강진의 중심이 됐고 지도의 시작점이 되었다. 봉우리가 높아 낮에는 깃발을 이용해 알리고 밤에는 불을 놓아 신호를 보낼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깃대봉을 우측으로 조금 낮은 독수리모양의 수리봉이 놓여있다.

풍동마을회관을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나타난 벽송마을은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마을하수도공사로 마을안길은 콘크리트포장이 분리돼 어수선함을 보였다.

마을에 대해 묻기위해 마을어귀에 위치한 김원중(77)씨 집을 찾았다. 마당한가운데 의자를 놓고 앉아 김씨를 통해 마을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김씨는 “마을앞에 위치한 드넓은 농토로 예전에는 부촌으로 유명한 마을이였다”며 “가정형편이 나은편에 속해 아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켜 객지로 대부분 떠나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뒤따라온 부인 위영님(74)씨는 “막내아들이 온줄알고 급히 달려왔다”는 말에 한바탕 웃음을 지었다.

마을을 돌아나가는 동안 눈에 띄는 것은 고풍스러운 한옥의 모습들이였다. 아직도 생생히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한옥의 모습은 마을어귀에서 만난 김씨의 말이 입증해주고 있었다.

마을안쪽에서 배를 나눠먹고있던 마을주민들을 만날수있었다. 중국산 농산물이 들어와 직접 재배해서 먹는다는 김만순(50)씨집을 찾았다. 김씨는 “마당에 널린 것이 단감이다”며 “먹고싶은 만큼 맘껏 먹으라”고 말하고 손에는 집에서 재배한 배를 깎아 내밀었다. 함께한 송안남(60)씨와 안난심(65)씨도 “배가 달고 맛있다”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벽송마을은 낡은 돌담과 자유롭게 자라난 탱자나무, 아직도 냄새가 풍길듯한 콘크리트담장이 어우려져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만들었다. 마을을 돌다 찾게 된 마을회관은 단층구조에 재래식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마을회관앞으로 1m정도의 넓이의 두개의 돌이 나란히 놓여있는 연자방아가 눈에 들어왔다. 돌의 가장자리에는 주민들의 수많은 작업으로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도정시설이 없던시절 쌀과 보리를 찧기위해 길다란 막대를 달고 일을 했을 연자방아의 모습이였다.

벽송마을에는 탈선(奪扇)이라 불리우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신랑이 신부집에서 예식을 치루기위해 마을을 찾으면 마을청년들과 신랑간에 서로 인사하는 풍습이다. 부모간의 상견례로 이뤄진 결혼에서 마을청년들이 신랑의 신체상태 확인과 한자풀이를 통해 신랑의 지식상태를 알아보는 놀이문화로 신랑은 마을청년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벽송마을출신으로는 군동농협 조합장을 지냈던 김장식씨, 군동농협에 근무중인 김재훈씨,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김형수씨, 일본 구수공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김행섭씨, 광주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김희수씨, 서울건강보험공단에 근무하는 김관식씨, 장흥법원에 근무하는 최병국씨가 이 마을출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