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칠량면 송로리 구로마을
[마을기행]칠량면 송로리 구로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5.07.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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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간 후 연일 쏟아지는 폭염은 한 뼘의 시원한 나무 그늘을 그립게 만든다.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에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찾은 곳은 칠량면 구로마을.

구로마을은 강진만에서 맛, 고막, 대합을 비롯한 각종 어패류가 풍부하게 생산돼 살기 좋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마을은 예전 바닷물이 만조가 되면 마을 뒷산까지 갈매기와 해오라기 떼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뤘다. 이에 갈매기 鷗와 해오라기 鷺를 써서 구로(鷗鷺)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또 비둘기가 많다고 하여 비둘기 鳩를 써서 구로(鳩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마을명인 구로(舊路)는 칠량, 대구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강진읍으로 나가기 위해 바닷길을 따라 오가던 옛길이라는 뜻에서 일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로마을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마을의 지형이 마치 반달과 같아서 월궁이라고도 일컬어졌으며 꿩이 많이 서식한 곳으로 장치동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마을에는 배의 순항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던 장소인 국사봉, 옛날 꿩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거치라고 불리다가 차츰 변해 일컬어진 걸치기,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예전 칠량북초등학교가 있었던 동뫼, 개형국인 동뫼를 따라 흐르는 소하천으로 개의 눈에 해당된다고 하여 부르는 지명인 개눈깔, 마을 뒷산으로 금이 매장돼 있다고 전해져 일제시대 광산업자들이 수차례 조사를 했었던 생금봉 등의 정겨운 지명이 마을 곳곳에 전한다.

오전부터 기승을 부리는 무더위를 피해 마을회관 앞 그늘에 모여 있던 마을주민들을 만났다. 마을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자 주민들은 강진만에서 생산되는 어패류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김종두(59)이장은 “고막과 맛, 바지락, 대합 등 각종 어패류가 풍성하게 나는 마을이었다”며 “갯벌에서 각종 어패류를 채취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킬 만큼 바다에서의 소득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김이장에 따르면 구로마을에서는 고막 종패가 많이 생산됐으며 인근 지역에서 종패를 구입하러 올 정도로 싱싱한 어패류가 많이 났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어패류에 대한 얘기가 계속되면서 주민들은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갯벌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표현했다. 함께 있던 주민 최한섭(53)씨는 “해역복원사업이 실시되고 장흥댐이 들어서면서 어패류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20㏊의 마을 양식장에서 연간 10여톤의 고막을 채취했지만 현재는 씨가 마른 상태”라고 걱정했다. 

구로마을은 현재까지 맛과 대합을 채취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예전의 3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안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는 수령 100년을 넘긴 팽나무의 그늘에 가린 ‘유선각’이란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선각 옆에 있는 고목은 지난해 천연기념물 324호인 소쩍새가 둥지를 틀어 관심을 끌었던 곳.

유선각에 만난 주민 서칠성(66)씨는 “소쩍새가 둥지를 튼 것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올 정도였다”며 “귀한 새가 마을에 집을 지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며 주민들이 마을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구로마을에는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미륵석불이 전해지고 있다. 김이장의 안내로 국도 23호선 너머 위치한 작은매봉산 중턱에 있다는 미륵석불을 찾아 나섰다. 잡목이 무성하게 자란 산길을 뚫고 10여분 올라간 곳에서 반쯤 헐린 움집 안에 서있는 미륵석불을 찾을 수 있었다.

높이 1m50㎝ 정도의 미륵석불은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었지만 닿아버린 코 부위를 시멘트로 덧발라 놓은 모습이었다. 이 석불은 40여년전 아들을 낳기 위해 치성을 드린 한 마을주민이 득남한 후 움집을 짓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민들이 반농반어업에 종사하는 구로마을에는 풍어와 풍년을 바라는 지석제와 갯제가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맞춰 마을에 위치한 입석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지석제를 지낸 후 마을 선창으로 자리를 옮겨 풍어를 바라는 갯제를 모신다.

마을이 형성된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는 지석제와 갯제는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구로마을은 지난 5월 어버이날을 맞아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재경 구로마을 향우회와 마을주민들이 뜻을 모아 경로위안잔치를 마련하고 출향인사들과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정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구로마을 출신으로 담양대학에서 고전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한선씨, 전남농촌진흥원에서 근무하는 김희권씨, 동원산업 판매과장으로 있는 김종성씨, 서울에서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재경 구로마을 향우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형두씨, 칠량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정동균씨, 반월공단에서 강화플라스틱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장을중씨, 칠량농협에 근무하는 최림씨 등이 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선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대합을 채취하러 가던 김선엽(여·74)씨를 만났다. 김씨는 “예전에는 물때에 관계없이 대합, 맛 등을 채취할 수 있었다”며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아서 젊은이들이 다른 마을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하루 4시간 정도 대합을 채취하고 있지만 20개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한번 작업을 나가면 10㎏ 넘게 대합을 채취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양이 크게 감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3남2녀의 자녀를 둔 김씨는 “갯것으로 자식들 모두 공부시킬 정도로 바다에서 얻는 소득이 많아 인근 마을에서 부러워할 정도였다”며 “각종 어패류가 풍부하게 생산되던 갯벌이 예전만 같지 않아 주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언급했다.

채취한 대합의 용도에 대해 김씨는 “매일 조금씩 모은 대합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휴가철에 고향을 찾는 자식들에게 해먹을 생각”이라며 “오랜만에 오는 자식들에게 고향의 맛을 전해주고 싶어 대합을 채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구 남호마을에서 시집온 김씨는 “마을 애경사에 주민들 모두가 힘을 모으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며 “서로 인정을 나누고 화합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마을자랑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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