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 창녕조씨(昌寧曺氏)
[강진의 성씨] 창녕조씨(昌寧曺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5.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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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는 신라 진평왕의 사위 조계룡을 시조로 한다. 후손들에게 조계룡의 탄생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조계룡의 어머니 예향이 갑자기 병이 생겨 창녕의 화왕산 정상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목욕을 한후 병을 고칠수 있었다.

병이 고쳐진후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겨드랑이 밑에 붉은 글씨로 조자와 비슷한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은 조씨의 성을 내리고 계룡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게 됐다.

이후 조계룡은 임금의 사위가 되고 금자광록대부(종일품벼슬) 태자태사에 이르고 창성부원군으로 임명됐다. 이후 조계룡의 5세손인 흠(欽)은 헌안왕의 사위로 태학사(종이품벼슬)를 지냈고 신라가 망하는 것을 슬퍼하며 토함산에서 은거하면서 신라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흠의 아들 겸(謙)은 고려태조 왕건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했고 시중(종일품벼슬)에 오르기도 했다. 겸은 창녕조씨의 중시조로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계룡의 25세손 정통(精通)은 과거에 수석합격해 문하시중(종일품벼슬)을 지냈다. 정통은 나주 남평에서 터를 잡아 강진을 자주 왕래했고 다섯명의 아들을 두었다. 다섯명의 아들이 모두 현명하고 극진한 효자로 마을이름이 오룡동이라고 지어질 정도였다.

둘째 응룡은 고려가 패망하고 조선이 건국돼자 집에서 은거하며 고려조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응룡은 후손들에게 벼슬길보다는 부모에 효도하고 학문에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이런 가르침은 후손들에게 학자와 효자가 많은 가문으로 만들어 나갔다.

32세손 의(誼)는 사화를 피해 작천면 행정마을로 찾아들면서 창녕조씨의 관내 생활이 시작된다. 유항제 선생에게 글을 배웠던 의는 유선생의 딸과 결혼하면서 강진에 정착하게 된다.
의의 아들 대남은 5명의 아들을 두었고 후손들이 번창하게 된다.

셋째아들 복흥은 성전면 월남마을로 터를 옮겼고 인근 지역으로 각 아들들이 생활터전의 잡기 시작했다. 복흥의 셋째아들 익송은 통훈대부(정삼품벼슬)에 올라 마량면 원포마을로 이주했다.

복흥의 아들 일상은 통정대부(정삼품벼슬)를 지냈고 8명의 아들을 두게 된다. 8명의 아들이 모두 대구면 계치마을로 터를 잡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8형제중 둘째 몽득과 셋째 몽린은 학문에도 뛰어나고 효성도 지극해 주민들에게 쌍효자라고 불리었다. 이들은 계치마을 입구에 정각을 짓어 부모를 봉양하면서 후학양성에 앞장섰다.

몽득의 4세손 병결은 동학군의 지휘와 훈련에 앞장섰다. 병결은 동학난이 발생하자 용맹함과 뛰어난 학문실력으로 이름을 크게 떨졌다.

강진에서 생활하고 있는 창녕조씨는 저의 후손들인 장양공파와 정통의 후손들인 시중공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창녕조씨의 후손들이 주로 생활하는곳은 대구면 계치마을, 군동면 쌍덕리, 도암면 선장마을등을 꼽을수 있다.

대구면 계치마을에는 효정재가 위치해 있다. 효정재는 응경, 응룡, 한룡, 몽린을 모시는 제각이다. 이곳에는 대학사라는 사당이 위치해 유림들이 매년 음력 9월 20일 제사를 지내는 원사로 가치가 높다.

군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효정재는 5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효정재는 임진왜란때 소실됐다. 이에 후손들이 지난 1888년 다시 복원하고 증축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효정재에서 보관된 서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홀기(제사때 순서를 적은글)등이 그대로 보전돼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어 기나긴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도암면 선장마을 입구에는 태계재가 위치해 있다. 성균관 진사를 지낸 태계를 모시는 제각으로 최근 새롭게 정비한 곳이다.

창녕조씨 출신으로는 인천에서 정진학원을 운영하는 조윤호씨, 광주에서 이비인후과를 경영하는 조순훈씨, 대구면사무소 민원담당 조한섭씨, 강진군청 기획정책실에 근무하는 조달현씨, 청자사업소 조각실에 근무하는 조유복씨등이 있다.

 

인터뷰

대구면 계치마을에 위치한 효정재를 도맡아 관리하는 문임을 맡고 있는 조정원(67)씨.
3년째 문임을 맡고 있는 조씨는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는 음력 9월20일이 종친회의 모임날짜”라며 “해남, 도암, 군동등 각 지역에서 조상을 찾기 위해 종친들이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씨는 “예전에는 타성이 문중제각에 별도로 마련된 관리실에 살면서 제각을 관리했다”며 “현재는 마땅한 관리인을 구하지 못해 문중 종친이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친회에 대해 조씨는 “강진에 별도의 종친회는 구성되지 않았다”며 “시제를 지내는 효정재가 문중의 종친회관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또 조씨는 “농촌을 떠나는 종친들이 많아 지역자체적인 종친회의 구성이 힘든것도 무시할수 없다”고 덧붙였다.

제각관리에 대해 조씨는 “문중에서 소유한 4천여평의 논이 있다”며 “논을 임대해 받는 소작료로 시제와 함께 제각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향토문화재로 지정된 효정재를 자랑하면서 조씨는 “제각보수와 지붕의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한다”며 “종친들의 도움을 얻어 제각보수와 관리에 더욱 힘쓸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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