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다산(茶山)을 떠올리며
[다산로에서]다산(茶山)을 떠올리며
  • 강진신문
  • 승인 2005.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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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전남도청 기획관.작천출신)

  다산(茶山) 정 약용 선생은 신유년(1801년) 추운 겨울에 강진으로 귀양을 오자마자 동문 밖 술집에서 외롭고 고독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5년이 되던 해 다산은 백련사에서 혜장선사(惠臧禪師)를 만나게 되는데, 비로소 새로운 생활과 함께 문화적 교류가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혜장선사는 자신이 즐겨 마시던 차를 달여서 다산에게 받치곤 하였는데, 다산으로 하여금 다인(茶人)이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결국 다산은 차와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차를 즐겼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고까지 하면서 차를 극찬 하였다. 해배귀향 할 때 다신계(茶信契)를 만들었던 것도 그만큼 차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다산은 초의(艸衣)라는 학승(學僧)에게 시론(時論)을 설하면서 몹시 친분이 깊었는데, 함께 1812년 월출산 백운동에 가서 하룻밤을 즐기면서 다산은 시를 지었고 초의는 백운도를 그렸던 일도 있었다.

초의는 나중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통해 좌선삼매(坐禪三昧)에 든 그는〈동다송〉과 〈다신전〉이란 책을 펴냈다. 차문화의 이정표 같은 책이었다. 선화(禪畵) 〈세한도〉를 그린 추사(秋史) 김 정희는 초의에게 차를 빨리 보내 달라는 서신 내용은 자못 해학적이다.       

 초의 혼자서만 돌샘 솔바람 사이에서 햇차를 마시고 멀리 고생하는 나를 걱정하지 않으니 30방을 맞아야 하겠소.
 

  세 사람은 차와 시, 그리고 선의 성인으로까지 추앙받게 되는데, 어쨌든 다산은 혜장선사를 만나게 된 것이 다인생활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다산의 역사적 배경답게 우리 강진은 전남도에서 녹차 생산량이 두 번째다.

보성군이 년간 743톤인데 반해 강진군은 136.7톤 밖에 되지 않지만 타시군에 비한다면 적잖은 양이다. 물론 성전면 장원산업의 설녹차가 다 차지하고 있지만 그만큼 녹차 생산지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근래 녹차가 사람 몸에 좋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된 뒤로 그 이용도가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그래서 보성군은 녹차 하나로 엄청난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것은 물론, 녹차 관련 제품까지 만들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

1998년에 농민, 영농조합, 기업이 한데 뭉쳐 보성녹차연합회를 만들면서부터 상황은 이미 예전이 아니었다. 보성녹차라는 공동 브랜드를 쓰면서 보성녹차야말로 명물임을 강조 했고, 보성군에서는 적극적인 후견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폭발적 성공으로 이어졌는데, 2001년까지만 해도 1000억 원에 불과한 미곡 매출뿐이었던 보성군은 녹차관련 산업 매출이 5100억 원에 달했던 것이다. 향토산업의 성공은 비단 보성 녹차뿐만이 아니다.

‘보령 머드랑’은 진흙을 주원료로 한 화장품 브랜드인데 지난 해 매출액이 15억 9000만원이었고, ‘안흥찐빵’ 역시 강원도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미 우리 강진도 녹차재배 적합지로 검증된 이상 녹차육성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할 때가 아닌가 싶다. 버섯, 녹차, 인삼 등이 미래의 소득작목으로 인정받은 지는오래 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 강진출신 김 재철 동원산업회장은 녹차캔 판매가 급증하여 원료가 걱정될 형편이라고 하면서 수매를 얼마든지 하겠다고 공언을 한 것을 보면 녹차육성의 전조(前兆)를 느끼게 한다.
  

녹차육성을 하려면 먼저 영농법인체의 결성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녹차재배는 특히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이 유리한데, 해안가와 접한 강진읍, 군동면도 적합지가 되겠지만, 북삼면 역시 안개가 많다고 볼 때 강진은 전 지역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영농법인체를 구성하는데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녹차는 식재 후 4 - 5년이면 수확이 가능한 식물이다. 한 번 식재해서 영구적으로 수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가치가 클 수밖에 없다.
 

한?일 FTA 대비를 위해 일본 녹차산업 현지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수출은 미미하고 외국산 1 ~ 1. 5만톤을 수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2002년 한국에서 10. 6 톤(8만$)을 수입하였는데 주로 발효차였고, 비교적 낮은 관세율(17%)을 채택하고 있어 시장이 개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수출은 미국 등 41개국에 228톤(41백만$)수출하였는데 주로 하급 녹차와 홍차였고, 앞으로 한국을 비롯해서 동양권에 고급차 시장개척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결론을 얻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강진은 이제 고급녹차육성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여 다산의 농민관(農民觀)이 꽃을 피워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FTA품목에서 녹차가 제외되어 경쟁력이 있고, 강진에 장원산업이 있으므로 기술을 배우기가 용이할 뿐 아니라, 국도비와 군비가 지원된다면 적은 사업비로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농촌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어려운 시기지만 다산의 농민관을 되새기며 빛나는 내일의 꿈을 심어보자. 한 줌 녹차를 심는 마음은 분명 꿈을 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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