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다녀와서(상)
평양을 다녀와서(상)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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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영동농장 회장>
평양! 참으로 가깝고도 먼 이름이었다. 지도를 펴고 보면 내가 사는 서울에서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우리 땅, 같은 얼굴에 같은 조상을 모시며 같은 말을 쓰는 내 민족이 날마다 숨쉬며 살아가는 곳.

허리띠 질끈 묶고 튼튼한 운동화 신고 길을 나서면 걸어서라도 며칠이면 도착할 것 같은 그 가까운 겨레의 삶의 터전. 하지만 오랫동안 그곳은 우리에게 얼마나 멀고도 먼 곳이었던가?

반세기만에 마침내 그 금단의 땅이 조금씩 우리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왔다. 2002년 10월 3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1회 개천절 남북 민족공동행사'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실 분단 이후 북한은 개천절 행사를 갖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보고 해마다 개천절 행사를 해온 남한과 달리 북한은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만 간주했고, 10월 3일도 단순히 고조선 건국일로만 기념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에 소재한 단군릉이 발굴되면서 단군을 실존 인물로 인정하고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추진하여 1994년 12월 단군릉을 복원하면서 최초로 단군제를 거행하고 이후 96년까지 10월 3일 단군제를 거행해 오다가 97년부터 공식적으로 개천절 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천절 행사를 개최하자는 이야기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실현되지 못하다가, 지난 9월 18∼21일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 한양원 위원장 등 5명이 북한을 방문해 북측의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류미영 회장 등과 공동 행사 개최를 합의함으로써 이번 행사가 이루어졌다.

행사는 개천절인 10월 3일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단군릉 에서 갖기로 하고 남한에서는 각급 민간단체 대표 100여명이 참가하며, 북한측은 남한측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직항공편과 체류 기간 동안 편의를 제공하고 남측은 단군 유적의 개건, 복구, 보존을 위해 물심 양면의 지원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남한측에서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대종교, 한국민족생활문화연구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단군학회, 농민문학회, 민화협, 흥사단, 기자단, 전국자연보호중앙회, 강동지역단체협의회, 통일연대, 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민예총 등 15개 단체와 각 여성단체 대표를 포함하는 총 101명의 참가단이 선정되었고, 나는 흥사단 대표 4명 중 한 명(흥사단 지도위원신분)으로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의 방북 일정은 10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로 확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0월 3일에 있을 개천절 남북민족공동행사이고, 그 외에도 단군학술회의와 관광 등 짧은 기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계획된 행사였다.

물론 북한에 가기까지의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출발을 이틀 앞둔 9월 29일까지도 북한측의 초청장이 도착하지 않아 애를 태워야 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절차가 다 이루어져 9월 30일부터 본격적인 방북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개인적인 소지품이나 마음의 준비는 참가가 확정된 추석 직후부터 진행되고 있었지만 행정적 준비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9월 30일 월요일 오후 3시부터 통일부, 안기부, 행사집행부로부터 방북 후 주의해야 할 제반 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준수 사항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가급적 정치적 발언을 삼갈 것, 북측 사람들의 자존심에 관계되는 언행에 주의할 것, 부자인 척 위세 부리는 언행을 삼갈 것, 체제 비판을 하지 말 것, 북측 인사에게 선물할 때는 책임자를 통해서 할 것, 사진 촬영 등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서 할 것, 돌출 행동이나 발언은 삼갈 것……. 2시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아, 마침내 북한에 가게 되는구나' 하는 실감도 났지만 한편 씁쓸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20년에 걸친 외국 생활을 하면서 사업상, 또 여행을 즐기는 성격상 가보지 않은 나라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지구촌 구석구석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건만, 어느 나라에 입국할 때도 받아 본 적 없는 주문을 지척의 거리에 있는 내 민족의 땅에 가면서 받게 되다니…….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현실인 것을. 10월 1일, 출발의 날이 밝았다.<계속 designtimesp=25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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