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환자촌에 폐가촌에 희망의 씨를 뿌리자
(독자투고)환자촌에 폐가촌에 희망의 씨를 뿌리자
  • 강진신문
  • 승인 2002.10.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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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1월 13일 서울로 간다
환자촌에 폐가촌에 희망의 씨를 뿌리자.
-우리는 11월 13일 서울로 간다-

새벽이면 일어나 하늘을 보고 하루를 여는 사람들. 한 집에 3대가 모여 살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그치지 않던 우리 농촌. 품앗이 온 아짐 아제들이 모여 일하며 함께 웃으며 우리는 노동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 새참 막걸리 한 잔에 발그레진 얼굴로 마을 대소사를 이야기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바로 그 곳, 그 땅 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지만 그 사람냄새 물씬 나고 힘이 넘쳐나던 고향은 오간데 없다.
허리를 낫보다도 깊이 숙이고서 일을 하러 밭에 나가시는 친구의 어머니, 하우스 일에 녹초가 된 몸으로 노총각 아들 밥 차린다고 싱크대에 몸을 의지해서 설거지하고 밥을 차리시는 농촌의 어머니, 속이 안좋아 병원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더니 위암 판정을 받아 근심에 병색보다 더 검게 되어버린 얼굴로 애써 괜찮은 듯 웃음지으는 아저씨, 2~3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서야 일을 조금 하고 다시 치료를 해야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들, 농촌은 환자 양성소다.
어디 그 뿐인가? 십여 년 전부터 아기 울음소리 끊어진지 오래고 곡소리만 이따금씩 들려오는 나의 동네. 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인이 70%가 넘고 50세 이하의 사람은 간단히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옛 고향의 모습대로 집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혼자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비워버린 집들은 서까래가 내려앉고 대들보에 쓰여진 글씨는 이미 희미해진 채 하늘을 보고 있다. 흉가들이 늘어 낮에도 소름이 돋는 그런 곳이 우리 고향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보자고 아직 여기에 남아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것이 생활의 버팀목이 된다. 사람이 희망이고 미래가 희망이다. 우리의 자식들이 우리의 희망이듯이...
그러나 WTO쌀수입 개방이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니, 한중 마늘 협상이니, 쌀 소득 보전 직불제니 하면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정부의 한심한 농업정책은 아예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희망 마져도 빼앗고 있다. 눈감으면 코 베어갈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지금 농촌은 멀쩡히 두 눈을 뜨고서도 간 쓸개 다 빼어 먹히고 있다.
농촌경제의 퇴락을 말하기에 앞서 아직 여기에 살고 있는 열정 있고 책임감 있는 젊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지 못한 현실을 봐야 한다. 사람이 떠난 집이 이미 집이 아니듯이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이 농촌이겠는가.
젊은이들이 우리들의 부모님이 그랬듯이 늙으면 약 없이 하루를 견디지 못하는 환자들이 되고 저녁이면 술 한잔 기우릴 친구 하나 없는 공동묘지 같은 농촌에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면 누가 이 땅에 발 딛고 살겠는가.
한 시대를 말 할 때는 그 시대 미래의 주인들의 얼굴을 보라 했다. 우리 농촌 젊은이들의 얼굴에 근심이 있다면, 그 근심이 생활과 삶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농업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올 겨울 이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아직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엔 창고에 그득한 나락이 많고 피땀 흘린 들녘의 고통이 아직 정겹다.
우리는 그래서 11월 13일 서울로 간다. 집을 장만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직장을 알아보러 가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아스팔트 농사도 농사다 진짜 남는 농사다. 아직 우리에게 농사가 희망이다.
강진군 농민회 사무국장 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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