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산 큰 바위 얼굴 전설이 이어지다
화방산 큰 바위 얼굴 전설이 이어지다
  • 강진신문
  • 승인 2024.07.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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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꽃동네 군동면(2)] - 화방산 동굴과 큰 바위 얼굴(Ⅱ)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강진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동화로 묶은 우리 강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11월 다섯번째 책, '우리동네 옛 이야기-꽃동네 군동면'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장미연·김옥애·강현옥 글, 김충호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강진 사람이 모여서 함께 쓰고 그린 작품집이라 그 울림이 더 크고 우리들만의 소중한 공감대가 있다. 
 
책을 통해 강진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 밝히는 마음속의 '등' 하나가 '반짝'하고 켜지길 기대해본다./편집자 주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부디… 우리 선영이를 지켜주십시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이 늙은 몸이라도 좋다면 산신(호랑이를 산에 사는 신이라고 말하기도 함)한테 바칠 테니, 제발 제발 우리 선영이를 살려주십시오."
 
선영이 할머니는 마지막 천 배를 하고 합장을 한 뒤 비로소 고개를 들어 밖을 보았어. 해는 이미 서산 너머로 떨어지고 화방마을 앞 보리밭 위로는 산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었단다. 화방사 아래로는 깎아지르는 듯한 비탈을 타고 돌계단이 아슬아슬하게 놓여있었어. 때는 마침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있어 알록달록한 연등들이 돌계단을 타고 죽 매달려 있었지.
 
할머니는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 그대로 차디찬 마룻바닥에 풀썩 쓰러져 버렸어. 그런데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번져오는 거야. 모란 향기 같기도 하고 연꽃 향기 같기도 한데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주 신비로운 향이었지. 할머니는 살며시 눈을 떴어. 그런데 세상에나! 눈앞에 부처님 같기도 하고 관세음보살님 같기도 한 분이 서 계시는 것이 아니겠어? 얼굴엔 인자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서 말이야.
 
"그대의 정성이 너무도 아름답고 갸륵하군요. 어서 일어나세요. 선영이를 보러 가셔야죠."
"관세음보살님? 부처님?"
 
선영이 할머니는 너무 놀라 이렇게 중얼거렸어. 하지만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그분은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지. 그리고 들고 있던 꽃으로 할머니의 몸을 쓸어 주셨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온몸에 다시 젊은이 같은 힘이 솟아나는 거야.
 
"여기서 조금 더 올라 산마루를 타고 가시면 큰 바위 아래 선영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큰 바위라면 사람 얼굴 모양을 한 큰 바위 말씀인가요? 우리 선영이가…우리 선영이가 살아서 온다는 말입니까?"
 
선영이 할머니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어. 관세음보살님 같기도 하고 부처님 같기도 한 그분은 빙긋이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어. 그리고 홀연히 사라지셨어. 가신 뒤에도 그 자리엔 한동안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지. 선영이 할머니는 그만 향기에 취해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단다.
 
소쩍~ 소쩍~ 소쩍~. 할머니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쩍새 소리가 절간을 가득 채우고 문밖으로는 풋사과 같은 새벽빛이 새어들고 있었어.
 
"아이고! 우리 선영이! 선영이를 찾아야지. 내가 우리 선영이를 두고 잠이 들었더란 말인가? 선영아, 할미가 간다. 금방 간다. 우리 선영이, 조금만 기다리거라."
 
할머니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서 마을로 향했어. 이상하게도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집까지 한달음에 내달았단다.
 
"선영이 아비야. 선영이 어미야! 아이고 우리 선영이를 찾았다. 우리 선영이를 찾았어."
"아이고, 어머니! 그게 무슨 말이요?"
"새벽에 관세음보살님이, 부처님이 다녀가셨어. 우리 선영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가셨어야."
"그게…그게 참말이요?"

"아, 그렇다니까. 시방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저 위에 큰 바위로 가보자. 거기에 우리 선영이가 있다고 선몽(현몽의 방언으로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을 해주고 가셨단다."
 
선영이 아버지가 보기에도 어머니의 말이 허황된 말은 아닌 것 같았어. 어머니는 천 배를 하고도 힘이 남아도는 것처럼 보였거든. 동네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모두 선영이 할머니를 따라나섰어. 할머니의 걸음이 얼마나 힘차고 빠른지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숨을 씩씩댈 정도였지.
 
"큰 바위라면 저 위에 사람 얼굴 모양을 한 그 바위 말이요?"
"설마 그 큰 바위 위에 선영이가 있단 말이요?"
"그러니깐 말이네. 그런데 저 할머니 걸음을 좀 보게. 어제까지도 구부정한 허리로 다리를 질질 끌며 걷던 노인이 저리 펄펄 날 듯이 산을 오르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요? 정말로 관세음보살님이 굽어 살피셔서 선영이를 살려주셨다면 얼마나 좋겄소?"
 
동네 사람들도 선영이네 가족 못지않게 선영이의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빌었단다.
"아이고! 저게… 저 알록달록한 게 뭐란가?" 
앞서 오르던 선영이 할머니가 걸음을 딱 멈추었어. 뒤따르던 장정들도 엉겁결에 그 자리에 섰단다. 
 

 

"저것이 호…호랭이 아니여?"
"뭐라고? 호랭이?"
"아이고! 우린 이제 다 죽었네!"
사람들은 모두 달아나려 했지만 너무 무서운 나머지 오금이 저려 꼼짝달싹 하지를 못했단다. 그때였어. 선영이 할머니가 단호한 소리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단다.
 
"조용히 좀 해보시오. 그리고 눈 좀 크게 뜨고 보시오. 저 호랭이는 이미 죽었소."
"뭐라고? 호랭이가 죽어있다고?"
"그것이 뭔 소리라요? 호랭이가 지 혼자 죽었다고라?"
 
두려움에 한 발자국도 나서질 못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선영이 할머니가 앞으로 나섰어. 죽은 것 같아 보여도 누워 있는 호랑이는 집채만큼 커서 두려움 그 자체였지. 하지만 선영이 할머니 말대로 천천히 다시 보니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진 않았어. 선영이 할머니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호랑이에게 다가섰지. 너무 긴장된 탓에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도 없었단다. 장정 서넛만 할머니 뒤를 조심스럽게 따를 뿐이었어. 
 
"오메! 세상에나!" 갑자기 선영이 할머니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 같은 게 새어 나왔단다. 그리고 뒤이어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뒤따라 나왔지.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 저것이 사람 아니여?"
"사람이라고?"
"아이고, 이 사람들아! 내가 뭐라고 했는가? 우리 선영이네, 우리 선영이여!" 정말이었어. 죽은 호랑이 품속에서 선영이가, 아 글쎄, 호랑이한테 물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선영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거야. 
 
"아이고! 선영아! 우리 선영이가 진짜로 살아서 왔구나!"
선영이 엄마가 선영이를 덥석 안았어. 그때서야 선영이는 눈을 부비고 일어났어. 그 난리 속에도 선영이 얼굴은 자기 집 안방에서 자고 일어난 아이 마냥 세상 편한 얼굴이었단다. 
 
"아이고, 선영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도토리를 줍다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 기절했거든요. 그런데 꿈에 인자하게 생긴 어떤 분이 나타나셔서 집에 가자며 저를 안아주셨어요."
 
선영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어.
"관세음보살님이네."
"무슨 소리여? 화방사 부처님이 보살펴 주신거여."
"관세음보살님이든 화방사 부처님이든 선영이 할머니의 천 배 정성이 아니었으면 선영이가 살아서 돌아왔겄소? 누가 도와주셨든 선영이 할머니 정성이 선영이를 살린 것이요."
 
"맞네, 맞아! 선영이 할머니가 선영이를 살린 것이네."
사람들은 살아온 선영이를 보고 모두 한마디씩 했어. 
그렇게 선영이 아버지는 선영이를 업고, 장정들은 호랑이를 둘러업고 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왔단다. 그런데 산을 다 내려와서 동네로 들어설 무렵에 누군가 큰 바위를 보고 외쳤어.
 
"어! 저길 보세요! 큰바위얼굴이 아까는 부처님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관세음보살님처럼 보여요."
"오메! 정말 그라네. 신기하구만. 정말로 우리 선영이를 두 분이 구해주셨는가 보네."
 
"아이구!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석가모니불!"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바위를 향해 합장을 했단다.
 

 

그해 사월 초파일은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게 치러졌어. 강진 현감이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호랑이가 잡힌 것에 크게 기뻐하며 화방마을 사람들에게 상을 내렸거든. 화방마을 사람들은 화방사 부처님이 호랑이를 잡아주신 것이라 여겨 화방사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연등을 달았단다. 알록달록한 연등 불빛들로 화방산이 마치 연화장(불교에서 그리는 세계의 모습.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겨 있는 세계라는 뜻)처럼 보였지.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모습이 있었지. 화방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도 큰바위얼굴을 향해 합장을 하게 되었다는 거야. 큰바위얼굴이 마치 관세음보살님이나 부처님의 화신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야. 

화방산 동굴과 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엔 재미있는 전설이 또 있어. 옛날 화방마을 옆 금강리 서은마을에 황부자라는 부자가 살았더래. 그런데 황부자는 부자이면서도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지 않아 인색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어. 하루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허름한 가사를 걸친 탁발승 한 분이 대문 밖에서 목탁을 두드렸어.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께 시주하시고 성불하소서." 
그런데 황부자는 시주를 하기는 커녕 하인을 시켜서 스님을 야멸차게 쫓아냈지 뭐야. 
 
"시주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시주라더냐? 그래, 그럼 저기 저잣거리에 빌어먹는 것들은 모두 전생에 시주를 안 해서 저리 산다더냐? 스님이란 것들은 죄다 강도들이구나. 남이 힘들여 번 것을 시주랍시고 뺏어가려고만 하니 말이다. 시주할 쌀 같은 것은 한 톨도 없으니 썩 물러가라고 전해라!"

대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은 스님은 속으로 기가 막혔지. '거 참! 사람 인심 한번 고약하군' 스님은 황부자 집을 나서며 광대바위(큰 바위 얼굴을 부르는 다른 이름. 광대처럼 인상 좋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를 가리키며 중얼거렸어. 중얼거리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황부자 귀에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였단다.
 
"저 바위의 콧대를 좀 낮추면 이 집이 더 큰 부자가 될 텐데……."
"스님! 방금 뭐라고 하셨소? 저 바위의 어디를 떼어내요?"
 
황부자는 황급한 마음에 멀어져가는 스님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물었어. 스님께 시주하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도 부자 된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온 게지. 하지만 스님은 들은 척도 않고 그대로 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단다.
 
황부자는 재물을 더 모을 욕심에 하인들을 시켜 정과 망치로 광대바위를 쪼게 했지. 하지만 스님 말을 제대로 듣질 않아 입과 턱을 쪼았어.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쪼아낸 자리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려 지금도 바위 아래쪽엔 붉은 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일부러 확인하겠다고 바위 아래로 내려가는 위험한 짓은 하면 안 돼. 왜냐하면 광대바위는 가까이 가서 보면 길이가 2m가 넘는 굉장히 큰 바위거든. 게다가 바위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라 매우 위험해. 
 
광대바위는 멀리 화방마을 들녘에서 바라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단다. 그리고 보는 각도나 시간에 따라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여. 
 
어찌 보면 콧대 높고 잘생긴 부처님 같고, 산모퉁이에 가려질 정도로 조금 돌아가서 보면 후덕하고 인자한 관세음보살님 같기도 하지. 또 어떤 이는 아침 햇살에 비친 모습과 지는 햇살에 비친 모습도 또 각각 다르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른 시각, 다른 각도에서 큰바위얼굴을 바라보며 관세음보살님도 만나보고 부처님도 만나보고 개구진 표정의 광대도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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