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산 호랑이 전설이 전해지다
화방산 호랑이 전설이 전해지다
  • 강진신문
  • 승인 2024.06.1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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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꽃동네 군동면(1)] - 화방산 동굴과 큰 바위 얼굴(Ⅰ)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강진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동화로 묶은 우리 강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11월 다섯번째 책, '우리동네 옛 이야기-꽃동네 군동면'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장미연·김옥애·강현옥 글, 김충호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강진 사람이 모여서 함께 쓰고 그린 작품집이라 그 울림이 더 크고 우리들만의 소중한 공감대가 있다. 책을 통해 강진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 밝히는 마음속의 '등' 하나가 '반짝'하고 켜지길 기대해본다./편집자 주

 

화방산 큰 바위 얼굴

 

강진군 군동면에는 화방산(예전엔 천불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함)이라는 산이 있는데 별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해서 예로부터 산짐승들이 많았대. 특히 산 중턱 화방사 뒤로는,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굴이 있어 호랑이가 살았더래. 
 
그래서 화방마을을 비롯한 인근 사람들은 화방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는 꼭 장정들 몇이 함께 어울려서 가곤 했단다. 화방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여인들도 해가 뜨면 올라가고 해가 지기 전엔 반드시 내려오곤 했지.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여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호환(호랑이에게 해를 당하는 일)을 당하는 일이 생겼어. 게다가 그 대상은 작은 가축에서 시작해 인명 피해까지 이어지니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지.
 
"아이고, 어제도 그 망할 호랭이(호랑이를 부르는 전라도 사투리)가 우리 집 누렁이를 물어가 부렀소. 내 자식같이 키우던 누렁인디……. 아이고, 누렁아!"
 
"이대로는 못 살겄소. 호랭이가 무서워서 집 뒤 밭에도 못 나가겠으니 이러다가는 호랭이한테 물려가 죽기 전에 굶어 죽게 생겼소?"
 
"애들은 또 어떻고요? 작은 애들뿐만 아니라 다 큰 애들도 서당엘 못 보내겄소. 이러다가 우리 애들 다 까막눈 되불겄소."
 
밤을 새고 나면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 서로 하소연을 해댔지만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었어. 그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산 중턱만 올려다볼 뿐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선영아! 선영아!" "선영아! 아이고, 선영아!"
"선영아! 이 어미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 좀 해보거라!"
 
숯처럼 시커먼 한밤중에 화방산 중턱은 아이를 찾는 애타는 목소리로 가득 찼어. 화방마을의 선영이라는 남자아이가 어두워져서도 돌아오질 않아 부모의 가슴도 숯처럼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횃불을 들었지만, 밤이 깊어지도록 아이의 옷자락 하나 찾을 수가 없는 거야.
 
"아이고, 설마 이번에도 호랑이가 물어간 것은 아니겄지라?"
행여 아이의 부모가 들을까 봐 누군가 조심스럽게 걱정스러운 소리를 꺼냈어.
 
"쉿! 조용히 하게. 저 애타는 모습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입조심을 시켰어.
 
빠지직. 빠지직. 관솔불(송진이 엉기어 붙은 소나무의 옹이 같은 부분에 붙인 불)도 사그라들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모두 마을로 돌아왔어.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의 호환에 부모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렸지.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달랐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선영이는 죽은 거라고 여겨도 선영이 부모는 끝까지 자식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어. 아이의 시신은커녕 저고리 고름 하나 발견하지 못했으니 장례도 치를 수 없었지. 
 
"선영이는 그라고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요."
"아이고, 선영이 엄마!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얼른 마음을 꽉 잡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아니요, 성님! 우리 선영이는 그라고 쉽게 갈 아이가 아니란 말이요. 그러니 그런 말 하실라믄 인자 우리 집 오지도 마시오. 우리 선영이는 그라고 쉽게 죽을 애가 아니요. 시방도 어딘가 여우 굴에라도 숨어서 이 어미가 찾아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선영이 엄마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어.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떨어졌지. 선영이 엄마는 얼른 옷고름으로 눈가를 닦았어. 눈물이라니……. 당치 않다고 생각했지. 자기가 눈물을 흘리면 선영이가 죽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리니 절대로 울면 안 된다고 다짐했어. 화방산 어느 굴속에 숨어 지금이라도 어미가 찾아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 여기니 마음이 급해졌단다. 
 
그날 이후로 선영이네는 부모는 물론 허리가 구부정한 선영이 할머니까지 선영이를 찾아 나섰어. 그런 모습을 보는 동네 사람들은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으니 처음엔 말리던 사람들도 포기하고 선영이 가족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기를 기다릴 수밖에. 
 
"선영아! 선영아! 어디 있느냐?" "선영아! 아빠다. 호랑이 따위 아빠가 해치워 버릴 테니 무서워 말고 어서 나오너라."
 
"선영아! 형이야. 형 목소리가 들리냐? 말을 못 하겠으면 돌이라도 던져봐!" 날이면 날마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화방산에는 선영이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어. 하루, 이틀, 사흘이 넘어가자 가족들의 목소리는 점점 쉬어서 목구멍에서 피가 날 정도였지.
 
"안 되겠다. 아무래도 우리 정성이 부족한가 보다. 내가 직접 화방사에 올라가야겄다. 부처님 앞에 천 배를 드려서라도 우리 선영이를 찾아주십사 하고 간절히 빌어야겄어."
 
사흘째 되는 날 선영이 할머니는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고 화방사를 오르겠다고 나섰어.
"아이고, 어머니! 화방사 가는 길은 성한 사람도 오르기 힘든디, 허리도 성치 않은 어머니가 거길 어찌 오르신단 말이요?"
 
"그래요, 어머니! 게다가 천 배라니요? 젊은이들도 반나절이 걸리는 천 배를 어머니가 어찌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러다가 어머니까지 쓰러지십니다."
 
가족들은 눈물로 말렸어. 그러나 선영이 할머니의 결심은 단호했단다.
"난 이제 살 만큼 산 노인인데 내 한 몸 보시(불교적 용어.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는 일을 말함)해서라도 우리 선영이를 구할 수 있다면 그리 해야 하지 않겠냐? 그러니 나를 말릴 생각들은 말어라."
 
그렇게 말하고 화방산을 향해 오르는 선영이 할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학 같았단다.
 

 

"에구에구. 저러다 선영이네 줄초상 나겠네. 불쌍해서 어쩌나?"
"쯧쯧! 그러게나 말이네. 애지중지하던 막둥이 손주 잃고 저 할머니가 실성을 하신 게야."
 
동네 사람들 모두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끌끌 찼어. 그러나 그런 걱정 따윈 선영이 할머니의 귓등도 스치질 못했어. 할머니는 오로지 선영이를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단다.
 
화방사는 화방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절인데 그리 먼 길은 아니었지만, 경사가 매우 가팔라서 일흔이 넘은 선영이 할머니가 오르기엔 위험하고도 힘든 길이었지. 
 
꾸구 꾹 꾸구 꾹. 키야아웅 이야웅. 멧비둘기, 살쾡이 등 여기저기서 산짐승 소리가 들려왔어. 하지만 할머니는 하나도 무섭질 않았단다. 어서 빨리 부처님 앞에 천 배를 올리고 선영이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했지. 선영이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올랐어.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부처님 앞에 섰단다. 노쇠한 할머니의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했지만 눈빛만은 강하게 타올랐지. 
 
"연년세세 지은 죄업 참회합니다. 연년세세 지은 죄업 참회합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합장하고 절을 해나갔어. 일 배, 이 배, 삼 배……. 
 
"자비로우신 부처님! 부디 굽어살피시어 우리 어린 선영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절은 점심때를 넘어서는 시각까지 끝나질 못했지. 천 배는 힘이 좋은 젊은 남자도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힘든 일이야. 그런데 일흔이 넘은 선영이 할머니에겐 그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사실은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그것도 모를 일이었지.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부디 우리 선영이를 가엾게 여기시어 생채기 하나 없이 무사히 돌아오게 살펴주십시오."
 
할머니는 애타는 마음에 관세음보살님도 간절히 찾았어. 등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법당의 찬 마룻바닥에 계속 찧어대는 무릎은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단다. 하지만 할머니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절을 멈추질 않았어. 절을 멈추는 순간, 시커먼 무언가가 선영이의 목을 콱 물 것만 같았거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할머니는 몸서리를 치며 주저앉으려는 다리를 일으켜 세웠단다.

 

 


화방산 동굴과 큰 바위 얼굴
큰 바위 얼굴엔 재미있는 전설이 또 있어. 옛날 화방마을 옆 금강리 서은마을에 황부자라는 부자가 살았더래. 그런데 황부자는 부자이면서도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보지 않아 인색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어. 하루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허름한 가사를 걸친 탁발승 한 분이 대문 밖에서 목탁을 두드렸어.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께 시주하시고 성불하소서." 

그런데 황부자는 시주를 하기는 커녕 하인을 시켜서 스님을 야멸차게 쫓아냈지 뭐야. 
"시주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시주라더냐? 그래, 그럼 저기 저잣거리에 빌어먹는 것들은 모두 전생에 시주를 안 해서 저리 산다더냐? 스님이란 것들은 죄다 강도들이구나. 남이 힘들여 번 것을 시주랍시고 뺏어가려고만 하니 말이다. 시주할 쌀 같은 것은 한 톨도 없으니 썩 물러가라고 전해라!"
 
대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들은 스님은 속으로 기가 막혔지. '거 참! 사람 인심 한번 고약하군' 스님은 황부자 집을 나서며 광대바위(큰 바위 얼굴을 부르는 다른 이름. 광대처럼 인상 좋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를 가리키며 중얼거렸어. 중얼거리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황부자 귀에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였단다.
 
"저 바위의 콧대를 좀 낮추면 이 집이 더 큰 부자가 될 텐데……."
"스님! 방금 뭐라고 하셨소? 저 바위의 어디를 떼어내요?"
 
황부자는 황급한 마음에 멀어져가는 스님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물었어. 스님께 시주하라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도 부자 된다는 말은 귀에 쏙 들어온 게지. 하지만 스님은 들은 척도 않고 그대로 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단다.
 
황부자는 재물을 더 모을 욕심에 하인들을 시켜 정과 망치로 광대바위를 쪼게 했지. 하지만 스님 말을 제대로 듣질 않아 입과 턱을 쪼았어.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쪼아낸 자리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려 지금도 바위 아래쪽엔 붉은 자국이 남아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일부러 확인하겠다고 바위 아래로 내려가는 위험한 짓은 하면 안 돼. 왜냐하면 광대바위는 가까이 가서 보면 길이가 2m가 넘는 굉장히 큰 바위거든. 게다가 바위 아래는 가파른 절벽이라 매우 위험해. 
 
광대바위는 멀리 화방마을 들녘에서 바라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단다. 그리고 보는 각도나 시간에 따라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여. 
 
어찌 보면 콧대 높고 잘생긴 부처님 같고, 산모퉁이에 가려질 정도로 조금 돌아가서 보면 후덕하고 인자한 관세음보살님 같기도 하지. 또 어떤 이는 아침 햇살에 비친 모습과 지는 햇살에 비친 모습도 또 각각 다르다고 하니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른 시각, 다른 각도에서 큰바위얼굴을 바라보며 관세음보살님도 만나보고 부처님도 만나보고 개구진 표정의 광대도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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