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차 떼고 포 떼고
[다산로] 차 떼고 포 떼고
  • 김재완 _ 시인
  • 승인 2024.05.2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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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_ 시인

모내기도 끝나고 양파 작업도 얼추 끝나가는 오뉴월의 농촌은 눈이 아플 만큼 아름답다.
 
넝쿨 장미와 찔레꽃의 향기는 도시민들의 귀농 로망을 일깨우고 벌써 마음은 마을 어귀에 와있다.
 
그중에는 고향이 그리워서,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수령이 오래된 정자나무 아래 평상이 있고 어김없이 장기판이 보이는데 오지랖이 넓은 훈수 쟁이는 오늘도 등짝 스매싱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궁(왕)을 잡고 승전고를 울린 장수는 의기양양 팔자걸음에 주머니를 연다. 차 떼고 포 떼는 형국이 비단 장기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 곳곳에서 우리를 시험 중이다. 건강한 긴장감을 즐기면서 파생되는 결과에 성취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는 전투력이 보인다.
 
스펙 패스는 치기 어린 주인공만의 객기가 아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대세고 창의적인 사고와 개인의 사유와 경험이 강점이 되는 자소서의 중요성에 취준생들은 오늘도 차포를 떼는 오지 체험 중이다.
 
대학, 학점, 전공, 나이, 고향 그리고 부모님 직업 등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영역은 모두 가린다. 오직 나만의 나에 의한 나의 소개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구현하는 것이니 어쩌면 선입견이 배제가 된 이상적인 채용 방식일 수는 있겠다. 인생 역전의 사다리 한 개쯤은 있어야 그래도 꿈이라도 꾼다면 그 사다리를 놓아주는 일은 사회의 몫이다.
 
마침, 명문가 집안의 의사가 가정 파괴범이 되었고 검정고시 출신이 회사의 ceo로 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을 보면 숫자는 결코 인성을 넘지 못한다는 진리 앞에 숙연함을 느낀다.
 
장식품으로 남겨진 스펙이 아니더라도 자신 본연의 울림이 있는 것이 공동체와 유기적인 관계 모색에 있다면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정의에 기반하여 또 다른 스펙이 될 것이다. 계급장을 떼고 한판 붙자고 부하가 상관에게 말한다. 맹랑하기도 괘씸하기도 하지만 덜컥 겁이 나기도 하는 으름장이다. 실력이 있다면야 카리스마가 있다면야 저 녀석이 나에게 건방을 안 떨건데 치고 올라오는 기세에 기가 죽는다. 계급장이 나의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 이외에 나는 상급자가 아니다. 결코 나에게 있어서 차와 포는 체면이자 위신이다. 
 
밥상머리에도 과일바구니에도 엄연한 주연과 조연이 자리한다. 소고기 등급, 달걀 등급 등 먹거리에도 가격 차이가 현저하다. 김치가 금치가 되고 국민 과일인 사과가 금사과가 되더니만 슬며시 상추 겉절이와 바나나가 거만하게 명함을 들이민다. 그래도 우리는 못난이를 택하더라도 배추김치와 사과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그 주인공들에게 1순위 청약으로 대접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들의 식감과 미각을 지켜주는 고마운 주체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패키지여행을 가다 보면 가이드가 일정을 바꿔서 인기가 떨어지는 후순위인 장소를 선택한다. 루브르 박물관이 휴관이라는 이유로 오르세 박물관으로 변경한다든지, 유명 맛집이 복잡하다는 핑계로 하위 레스토랑으로 간다든지 말이다. 
 
삶의 전반에 걸쳐 클라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언사를 툭 뱉는다.
 
"그럼 차 떼고 포 떼면 뭐가 남는 거요?" 그들에게는 루브르는 차요, 미쉐린 별은 자존감의 왕이다. 차이가 발전을 낳고 계급이 선한 의지를 부르고 스펙이 안정을 선물하는 사회를 소망한다. 그래서 무거운 책무에 부당한 업무에 시달려도 담보되는 미래의 꿈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아울러 주변 배경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오직 자아가 성숙한 나만의 능력과 나의 객관화 가성비 좋은 효능감 등을 인정하는 사회 역시 소망한다. 한수 앞을 내다봐야 한다. 링 밖에서 냉철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훈수 두듯이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장기판의 지혜를 지렛대 삼으라는 고언이다. 그러함에 차와 포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떼는 용기가 있는 이들에게도 쉬어가는 의자와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하며 떠나지 않고 은근한 향기가 남아있는 나의 손에도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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