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삐비꽃 필 무렵
[다산로] 삐비꽃 필 무렵
  • 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 승인 2024.05.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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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봄이 깊어 간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낙화로 나뒹굴고 산벚꽃 탱자꽃도 제 길을 찾아갔다.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잎새들 날로 짙어가고 감나무 가지마다 감꽃이 피려는지 꽃받침이 돋고 있다. 들판의 무논에서 개구리 밤새 울고 뻐꾸기는 앞산 뒷산을 오가며 덩달아 분주하다.  
 
이처럼 계절이 푸르러 가면 논틀밭틀 여기저기서 삐비순도 쑤욱 쑥 올라온다. 길고 긴 봄날의 보릿고개를 같이 넘던 추억의 삐비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어렵던 그 시절, 삐비는 간식이라기보다는 허기를 달랬던 주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도 나도 한 주먹 두 주먹씩 뽑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쏘옥 쏙 빼먹곤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삐비라는 명칭은 사실 전라도 방언이다. 강원도 등지에서는 삐삐라고도 불리지만 삘기가 표준말이다, 
 
하얀 뿌리 때문에 한방에서는 백모근으로도 불린다. 배가 고파 이삭꽃의 속살은 물론 달착지근한 뿌리까지 즐겨 먹었지만 삐비는 오래전부터 약재로도 쓰였던 것 같다. 꽃이 피기 전의 꽃이삭은 지혈 작용이 뛰어나 코피가 날 때 콧구멍에 솜 대신 틀어막아도 효험이 있었다니 여러모로 고마운 풀이 삐비인 것이다. 
 

삐비는 꽃송이를 뽑아 먹어도 먹어도 지천에 핀다. 조붓한 길가에도 피고 드넓은 산자락에도 핀다. 무리를 지어 하얗게 핀다. 햇볕 드는 곳을 좋아해서인지 고사리처럼 묘 주변에 더 많이 핀다. 
 
삐비꽃 듬성듬성 핀 오래된 봉분은 자연의 일부가 돼 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더 많이 가졌든 덜 가졌든 결국은 모두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데 봉분의 크고 작음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산비탈 깎아 쓴 석곽묘 아래 아래, 낮게 엎드린 띠풀 쓴 봉분 하나, 저 묘 참, 인간적이네 길 가다 스친 생각(유헌 '인간적이라는 그 말' 전문)

요즘은 장묘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봉분보다는 조상을 납골당에 모신다거나 수목장 혹은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대리석으로 둘러친 웅장한 묘보다는 자그만 흙무덤이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게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면 지나친 역설일까. 동네 너머 자드락길 산책로에서 오래된 무덤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조붓한 산책길 옆 봉분이 둘 무덤이 둘, 이승의 신발 굽도 저리 높고 낮았을까, 삐비꽃 듬성듬성 핀 저 자리가 꽃밭인데,(유헌, '오래된 무덤' 전문)

봄바람에 휘날리는 삐비꽃은 한 시절 우리네 삶의 대서사시이다. 삐비의 여리디여린 새순으로 허기를 달래며 춘궁기를 보냈고 힘든 날들을 건너 왔다. 삐비의 꽃순을 같이 뽑던 그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그래서 나에게 삐비꽃은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삐비꽃과 함께 울고 웃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삐비를 닮은 나의 어머니가 그립다. 

애써 몸 세우려고 기대서지 않았다, 단물 다 내어주고 심지까지 다 뽑히고, 밟히고 베이면서도 산기슭 지켜왔다. 바람에 맞서지도 피하지도 아니하고, 찬 이슬로 꽃을 피워 윤슬처럼 반짝이며, 은발로 다녀가시는 울 어머니, 하얀 꽃(유헌 '삐비꽃 봉분' 전문)

어머니는 그랬다. 자식들이 늘 먼저였다. 아들 딸을 위해 삐비처럼 밟히고 베이면서도 이 땅을 지켜왔다. 애써 몸 세우려고 기대서지 않았고, 바람에 맞서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가진 게 없었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랬다. 아버지들이 그랬다. 
 
올해도 삐비꽃은 피고 또 질 것이다. '은발로 다녀가시는 울 어머니, 하얀 꽃'이 어머니의 봉분에도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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