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사는 득음터였다
고성사는 득음터였다
  • 문화부 기자
  • 승인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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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소리’ 적자 정권진(1927~1986) 명창의 독공터
강진읍 고성사는 득음의 장소였다. ‘득음’이란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는 물론이고, 바람과 물, 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새소리 등 온갖 짐승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경지를 일컫는다.

소리꾼들이 이 경지에 오르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 ‘독공’ 이라는 수련이다. 독공이란 혼자 또는 고수만을 데리고 소리 연습을 하면서 소리의 이치를 깨닫는 독습의과정이다.

소리꾼은 대개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친다’ 는 구전심수의 전통적 방법으로, 스승이 한 구절을 부르면 제자가 따라 부르면서 소릿길을 익히게 된다.

이를 ‘소리를 받는다’라고 하는데 제자는 이때 장단에서 발성, 시김새(소리에 깃든 미적인 여운 또는 예술적 감흥)에 이르기까지 소릿길에 대한 대강의 윤곽을 터득하게 된다.

소리를 받는 과정을 거치면 옛날 소리꾼들은 대개 절이나 암자, 또는 산속의 토굴에서 독공에 들어갔다. 자기만의 독특한 소리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한 것으로 ‘소리의 자기화’를 위해서다. 이때가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처절한 시기로 여러 명창들의 독공에 대한 숱한 경험담이 전해오고 있다.

고암모종으로 알려진 고성사는 소리꾼의 독공터였다. 이곳이 ‘보성소리’의 적자인 정권진(1927~1986) 명창의 독공터다. 그동안 대충 지나쳤지만 고성사는 소리꾼과 관련지어 볼 때 풍수와 절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주지인 현주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보은산은 산의 형태로 보아 소가 누워있는 와우형이며, 산의 정상은 소머리를 뜻하는 우두봉이고, 절은 소에게 방울을 다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절 이름도 독특하게 높을 고와 소리성자를 쓰는 곳이어서 당대명창이 나올 만한 자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인 이 절터는 소의 방울을 다는 자리답게 조그맣다.

조선후기에 세워진 고성암에서 이 절이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1801년(순조 1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혜장스님과의 인연으로 1805년부터 이듬해까지 고성암에 머물면서 학문을 펴, 이곳은 보은신방 이라고도 불리운다.

금릉팔경의 으뜸으로 치는 것이 해질녘 고성암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인 고암모종이다.

이곳에서 독공으로 소리를 연마했던 정권진 명창 역시 ‘보성소리’ 유파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소리꾼이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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