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칠량면 동백마을
(마을기행)칠량면 동백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5.03.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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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자생 동백꽃...마을회관 합동세배

잔뜩 웅크린 만물이 기지개를 활짝 편다. 봄기운은 헐벗은 나뭇가지에 새눈을 움트게 하고 부쩍 키를 키운 보리는 황량하던 들녘을 푸르름으로 물들여간다.

강진읍에서 국도 23호선을 타고 칠량면소재지로 가다보면 넓은 평야를 앞에 뒤고 나지막한 뒷산이 포근히 감싸고 있는 칠량면 동백마을을 만날 수 있다.

동백마을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인 동백과 이름을 같이 한다. 예전 마을에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정으로 불리다가 동백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마을에서 이제는 동백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마을 곳곳에 자생했던 동백나무가 고사하면서 주민들이 여러 차례 나무를 심었지만 잘 자라지 않아 마을 이름에는 동백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동백마을은 뱀처럼 길게 늘어진 마을 동남쪽 야산을 뱀대가리등이라 하며 뱀머리형국을 하고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씨들이 제일 먼저 터를 잡고 살았으나 세금을 내지 않아 쫓겨난 후 광산김씨가 옮겨와 마을을 형성했다. 현재 청주김씨, 해남윤씨, 제주고씨 등 20여 호 6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동백마을에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듯 토속적이고 정겨운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마을 입구 좌측에 있는 산등성이로 풍수지리학상 좌청룡에 해당된다고 하여 일컫는 청룡등, 동백승강장 밑에 있는 바위로 형태가 납작하다고 해서 부르는 납작바위, 마을 앞들로 물이 귀해 두레로 물을 품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부르는 두레배미, 마을 뒤 야산으로 모양이 뱀처럼 생겨 일컫는 뱀머리굴청, 옛날 서당자리가 있었던 골짜기인 서재골, 예전 마을에 처음 입촌한 것으로 전해지는 서씨들이 살았다고 해서 부르는 서촌내, 밭가에 돌을 많이 쌓아 담같이 되었다고 하여 부른 지명인 담을밭, 지나가던 장수가 힘을 자랑하기 위해 3개의 돌을 올려 놓았다고 전해지며 모양이 세 층을 이루고 있는 장수바위 등의 정겨운 지명이 주민들 사이에 불리고 있다. 

오전 일찍 찾은 마을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농사 준비를 위해 들일을 나가서인 지 한적한 모습이다. 마을회관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몇몇 주민을 만나 마을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회관에서 만난 주민 마대선(80)씨는 “3년 전부터 찰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종자를 파종하느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들에 나가 있다”며 “농한기에도 쉬지 않고 일일노동을 나갈 정도로 부지런한 마을로 낮에는 주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마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마을회관을 찾은 주민 이희식(69)씨는 “동백마을은 효행으로 표창을 받은 주민들이 많을 정도로 경로효친 사상이 지켜지고 있는 곳”이라고 마을자랑을 했다. 마을에는 30여년간 시아버지께 효행을 다해 강진군수와 강진향교에서 효부상을 받은 송석순(79)씨와 효부로 이름이 알려져 강진향교로부터 효부상을 받았던 배정순(70)씨가 주민들의 자랑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로효친을 중시하는 마을에는 음력 섣달 그믐달 마을주민들과 출향인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합동세배를 하는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설날 각 가정을 돌며 하던 세배를 간소하게 변화시켰지만 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만은 꾸준히 유지해가고 있다.


동백마을은 지난 79년 충북에서 인삼씨앗을 구해와 600여평의 밭에서 4년근 인삼을 재배하기도 했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인삼재배는 토양이 적합하지 않아 중단됐지만 주민들은 특화작목 재배로 농가소득 향상을 꾀하고 있다. 고추를 재배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찰옥수수를 재배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을회관 입구에는 광산김씨가 입촌한 후 심었다고 전해지는 사장나무 2그루가 남아있다. 8년 전까지 수령 400~5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 2그루, 귀목나무 4그루의 사장나무가 서 있었지만 마을 안길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4그루가 베어져 현재는 귀목나무 2그루만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하고 있다.

동백마을 출신으로는 제21대 칠량면장을 역임한 김기표씨, 마량초등학교 교감을 지낸 김남중씨, 강진군교육위원과 2대 칠량면위원을 지낸 김영석씨, 삼협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득중씨, 삼능건설주식회사 전무로 근무한 김민수씨, 수협중앙회 영등포지점장을 지낸 김재율씨, 영광군청에서 근무하는 이병철씨, 인천 세관에 재직하고 있는 윤순홍씨 등이 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송석순(79)

동백마을에서 인근 한림마을로 넘어가다 푸릇하게 자라고 있던 보리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송석순(여·79)씨를 만났다.

10마지기 보리농사를 짓고 있는 송씨는 “지난해 가을 기관지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보리 파종이 한달 정도 늦어졌다”며 “양지바른 곳이라 보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잘 자라고 있어 5월 수확에는 문제가 없을 것같다”고 말했다.

이어 송씨는 “농약 냄새를 맡을 수 없을 정도로 기관지가 좋지 않아서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틈틈이 호미로 잡초를 뽑아내며 무농약으로 보리를 재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살 꽃다운 나이에 군동 동동마을에서 시집온 후 지난해 결혼 60주년을 맞았다는 송씨는 “자식들이 결혼 60주년 잔치를 크게 마련해줘 남편과 전통혼례식을 다시 치렀다”며 “60여명의 손자들과 증손자들까지 모두 참여해 가족들의 화목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랑했다.

마을주민들에 대해 송씨는 “주민들의 성품이 온순하고 인심이 좋아 서로 다툼이 없다”며 “웃어른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하는 마을의 전통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송씨는 “서울에 있는 큰아들이 함께 살자고 하지만 60여년 정붙이고 살아온 주민들과 있는 것이 가장 맘 편하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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