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에 남편 잃고 후손들 교육열 불태운 이순연 할머니
태평양전쟁에 남편 잃고 후손들 교육열 불태운 이순연 할머니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5.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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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 오랜 뒷바라지...손자 의학박사 취득 남다른 감회
▲ 이순연할머니(좌측)가 아들 마금조씨와 손을 잡고 있다.

태평양 전쟁때 강제징용 된 남편을 잃은 군동 하신마을 이순연(82)할머니는 지난 12일 마을회관에서 손자의 의학박사 학위취득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던 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스므살 때 혼자되어 외아들을 키웠고, 광주에서 5명의 손자와 손녀들을 뒷바라지 해서 대학공부를 시켰는데 이번에 손자 마양래(38.광주 상무지구 이안과병원 근무)씨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다. 

의학박사가 귀한 시대는 아니지만, 마을사람들은 태평양전쟁때 남편을 잃은 이 할머니의 남다른 교육열이 오늘날 손자의 성공을 만들었다며 마씨의 학위취득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 할머니는 결혼한지 1년만인 1943년 남편 마영옥씨가 전쟁터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 남편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리고 1년 후 남편의 사망통지서가 날아 들었다. 이름도 생소한 파푸아뉴기니란 곳에서 사망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곁에서는 이제 갓 한살 먹은 외아들이 천진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오랫동안 울 수도 없었다. 전사한 남편 역시 외아들이여서 시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무엇보다 아직 엄마소리도 하지 못하는 아들을 키워야 했다.

이때부터 이 할머니의 인생역정은 시작됐다. 시부모님이 농사를 지었지만 농사일에 억척같이 뛰어들었고,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이 할머니가 챙겨야 했다. 누구보다 교육열이 높아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외아들 마금조(63)씨을 당시 광주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이 할머니의 교육열은 손주들에게 이어졌다. 1남4녀의 손주를 모두 광주에서 자취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은 마양래씨도 이 할머니가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자취방에서 밥을 해주었던 손자다.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 어머니인 조연순(61)씨는 몰라도 이 할머니는 알 정도였다. 

이 할머니의 한 평생은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켜 지난 1970년대에는 교육장장한어머니상과 강진향교효열부상, 전남도지사상등을 받기도 했으며, 문중에서는 지난 2002년 이 할머니의 행적을 주변에서 본받자며 마을입구에 효열(孝烈)비를 세워 주었다.

이 할머니의 아들 마금조씨는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를 회복해 준다는 소식에 강진에서 3번째로 아버지의 명예회복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금조씨는 “아버님과 일찍 사별하신 어머님은 후손들의 교육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며 “아버님의 삶이 재조명되면 어머니의 맺힌 가슴도 어느정도 풀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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