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말(言)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다산로] 말(言)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 김성한 _ 수필가
  • 승인 2023.06.0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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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하원의원 선거 때이다. 시내의 번잡한 교통때문에 합동연설회 시간에 늦었다. 상대 후보가 호기라 생각하고 인신공격을 했다.

"…처칠은 늦잠꾸러기라고 합니다. 시민을 모아놓고도 시간에 늦은, 저렇게 게으른 사람을 당선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처칠이 특유의 옹다문 입을 열고 응수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장내는 폭소가 터졌다.

총리가 된 후에 국회 출석 시간에 또 늦었다. 그가 계면쩍게 연단에 올라섰다. " … 늦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회의가 있는 날에는 집사람과 각방을 쓸 생각입니다."

입은 재앙의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이라고 했지만,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 고도 했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라고 한 대통령의 말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대통령실과 국민의 힘이 입을 모아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믄' 이며 '미 의회' 가 아니고 '우리나라 국회' 라고 했다. 또 그것을 보도한 기자는 전용기 탑승이 배제되고, 그 신문사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통보받았다.

만약 이 말이 논란이 되었을 때 대통령이 함구하고 있지 않고 "우리 기자님! 훌륭했습니다. 그때 제가 했었던 정확한 워딩은 잘 생각나지 않으나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혼자서 가만히 내뱉었던 말인데 기자님께서 기술도 좋게 녹음을 하셔서 제 이름이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금 후 저의 침실에서 하는 얘기까지 녹음하실까 봐 그것이 조금 두렵습니다." 라고 했었더라면-

그런데 이번엔 또 일본에 대해서 한 말이 설화(舌禍)를 일으키고 있다.

" -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그가 대구의 위안부 역사관에서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에게 했었던 "-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 내고, 할머니들께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다 해결해 드리겠다" 라는 말과 정면 배치(背馳)되고, 나아가 대법원의 판례까지 뒤집는 결과가 되어 논란이 또 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국힘당에서 변명을 했다. "미국의 기자에게 한 말인데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의 오역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 이였다"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사를 쓴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한 것은 일본이 아니고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였다며 영어로 된 기사원문을 공개했다.

항차, 이 말은 말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저의조차도 황당하다. 일본이 과거를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었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2차대전을 일으킨 다른 전범국가들과는 달리. 지금까지 전쟁을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고, 오히려 그들이 묻혀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고있는 것이다.

「왜군들이 지나간 마을의 앞산과 뒷산의 소나무에 아침이면 목화송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임진왜란때 그들에게 겁탈당해 흰옷입은 우리 여인들이 목을 매달아 죽어가는 모습이다. 당시 여자의 정절은 곧 목숨이였던 것이다.

「단군이래 5천년 동안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였다. 그래서 '호랑이 온다' 하면 울던 아이가 그쳤다. 그런데 그것이 36년의 왜정을 거치면서 순사로 바뀌었다. 아이가 울면 '저기 순사 온다' 로-.」얼마나 그들의 만행이 악랄했으면 그러했겠는가?

물론, 일제의 침략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그들은 호의호식을 하고 우리 국민들을 폭압하는데 앞장 섰기 때문이다.

"영토를 잃으면 되찾을 수 있어도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이 시대를 사는 것이 부끄럽다. 섧은 봄날, 앞산에서 뻐꾸기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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