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시카고에 간 강진청자
[다산로] 시카고에 간 강진청자
  • 하종면 _ 향우, 변호사
  • 승인 2023.05.3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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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면 _ 향우, 변호사

2층 계단식 강의실에서 잠시 시선을 바깥쪽으로 향하면 거대한 미시간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미시간 호수는 5대호 중의 하나로 북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시간주, 인디애나주, 일리노이주, 위스콘신주를 접하고 있다. 미시간 호수는 담수면적만 하여도 남한의 절반 정도에 이르고, 전체 면적은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과정(LLM)을 마치고 졸업을 하였다. 위키백과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 대하여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도시인 에반스턴과 시카고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꼽히며, 여러 대학 순위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노스웨스턴대학교는 교수 및 동문 중에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23명에 이른다.

졸업 기념으로 동양 도자기라고 하면 중국 도자기 정도를 알고 있을 미국 사람들을 위하여 강진 청자를 기증하기로 하고, 로스쿨 학장을 위해서는 상감매병을, 마지막 과목인 국제조세를 강의한 교수를 위해서는 청자 주전자를 강진의 지인을 통하여 주문, 전달받고 비행기 편으로 시카고로 공수하였다. 그리고 강진청자를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고려자기를 비롯하여 한반도에서 출토된 도자기 등에 대하여 시대별로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발행의 책 한 권을 구하여 정독하였다. 한반도에서 고려자기 출토지가 한두 곳이 아닌데, 강진청자가 유명한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비취색을 들 수 있다. 문헌에서는 비취색을 선(禪)의 색깔이라고 한다.

비취색을 내기 위해서는 가마 속에 유약을 바른 도자기를 넣고 한참 불을 땐 뒤에 가마 온도가 일정한 온도(1100도)에 이를 때 불구멍을 닫아 산소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한다. 불구멍을 막아 산소공급을 차단하면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서 그릇의 밑감으로 쓰는 흙이나 유약에 포함된 산소까지 빼내서 연소하게 되는데, 밑감 흙이나 유약에 들어 있는 철분 속에서 산소가 빼앗기는 현상(deoxidize)이 발생하면서 철 본래의 푸른색 즉 비취색이 나타나게 된다.

화학적으로 설명하면 특히 유약에 포함되어 있는 극히 적은 량(1~3%)의 제2산화철이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서 제1산화철로 변화하면서 비취색이 나타난다고 한다. 가마의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특별한 기계나 장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화학 원소 개념도 등장하기 전인 그 옛날에 천하제일의 비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마 온도가 최적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 불구멍을 막고 불완전연소를 유도하는 고도의 굽는 기술이 필요하였다.

도공이 자칫 잘못하여 불구멍을 열어놓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면서 굽거나 또는 뒤늦게 불구멍을 닫으면 비취색이 아니라 누르스름한 빛을 띠게 되고 말았다고 하니, 옛 강진지역 선조 도공들의 높은 기술 수준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강진에서 출토된 고려청자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상감(象嵌)기법을 이용한 것인데, 상감청자의 출현은 동양도자사에서 획기적인 사실이라고 한다. 상감기법은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에서 애용되던 기법으로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도자기에 응용되었는데, 청자의 바탕에 문양을 음각한 후 그 부분에 붉은 흙이나 하얀 흙을 메꾸는 것이다. 가마에서 구운 후에 붉은 흙은 검은 색으로, 하얀 흙은 흰색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시카고에 가져간 상감매병은 청자에 옅은 검은 색 문양과 흰색 문양이 있는 것이었다. 

국제조세 강의가 끝난 후 교수님에게 강진에서 가져간 청자 주전자를 포장상자 통째로 드렸는데, 교수님이 포장상자에서 주전자를 꺼내 다른 학생들에게 자랑하려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주전자 상단 부분이 가로로 금이 가 있었다. 얼마나 소중히 해서 가져간 것인데...안타깝고, 놀랍고, 미안하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교수님이 전문가에 맡겨 손보면 된다면서 오히려 필자를 위로하였다. 다행히도 상감매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강진청자 축제에 몇 차례 참석한 적이 있다. 일요일 오후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면 밀려오는 피로와 함께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는 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등재된 2023년도 개최 예정 지역축제는 무려 1,129개에 이른다. 하루에 3개꼴로 축제가 있으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다. 흔하고 따분한 일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꽃 축제나 먹거리 축제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청자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지역은 강진과 전북 부안뿐이다.

고려 시대에 청자가 도자기술을 전해준 중국에 수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천하제일이라고 감탄하였던 뛰어난 비취색과 더불어 직선이 강조되고 강한 양감(量感)을 지닌 중국 도자기에 비해 상형(象形)청자에서 보듯 섬세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색다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고향 강진청자축제가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서도, 격조 높고, 여유 있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진한 여운이 남는 명품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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