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염원(念願)의 사계절
[기고] 염원(念願)의 사계절
  • 박상봉 _ 전 완도금일고교장
  • 승인 2023.05.3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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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봉 _ 전 완도금일고교장

얼어붙은 대지는 뜨거운 태양열에 녹고, 물가에 젖은 대지에 푸른 새싹이 돋아나면 개구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름 없는 들꽃도 자태를 뽐내며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 모질고 잔인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봄은 대 생명력을 잉태하기 위해서 냉혹한 찬 바람 부는 겨울을 지나면서 따뜻한 태양 아래, 새 생명을 땅과 하늘의 기를 받아 발돋움합니다. 봄에 씨를 심는 것이 인자한 애정의 어머니 품같이 포근합니다. 그러므로 대 생명력은 활기를 찾아 왕성할 때, 빨리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하고 순식간에 넘어가고, 봄의 서정은 느낌으로 젖어 마음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신록의 계절인 5월은 하늘은 푸르고 강물은 맑습니다. 그리고 초록은 무성하고 갖가지 꽃들이 피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들에는 온통 푸름으로 넘실거리고 창공에는 종다리가 지저귀며 어디선가 바람 곁에 아이들의 버들피리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목가적인 풍경은 낙원처럼 느껴집니다. 태양이 붉게 타고 뜨거운 열이 모든 것이 가벼워져서 날고, 하늘로 올라가는 물기도 천둥으로 변하면 놀란 대 생명력은 왕성한 활동을 재기합니다.

서서히 태양이 더 높이 뜨고 강한 열기를 내뿜으면 대지는 뜨거워지고, 물기 가득하면 온 천지는 초록색으로 변하면서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여름은 이 세상 더러운 모든 것을 깨끗이 치우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계절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면 태양은 조금씩 기울어지고 하늘이 높아지는 천고마비(天高馬肥) 가을이 옵니다. 봄이 떠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떠난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떠난 것을 모아서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결실의 시간이므로 바쁩니다. 마침내 생기 넘친 푸른 잎들은 염원(念願)의 흔적으로 붉게 물들어 떨어집니다.

온 천지가 붉은색이 회색으로 변해가면서 마음 또한 허전해집니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떠난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안에 있기도 하고, 밖에 있기도 하여 포근한 안식처를 찾아가고 싶어 합니다.

나무 이파리가 떨어지는 가을은 모든 산에 단풍이 눈부시고 밤에는 달이 밝고 벌레 소리 흥겨우니 내 영혼을 포근하게 하지 않나요?

기울어져 가는 태양이 서산에 넘어가면 찬 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옵니다. 겨울에는 흰 눈이 포근하게 내리고 쌓여서 마음 또한 포근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세찬 삭풍에 앙상한 가지만 남긴 나무는 비록 허전할지 몰라도 두꺼운 옷 입고 문을 잠그면 그 안에서 찬란했던 시절을 생각하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겨울은 포근한 계절이요,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므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우주는 그 변화의 원리에 따라 사계절이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지 않는 계절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허전하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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