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믿음 - 무신불립(無信不立)
[다산로] 믿음 - 무신불립(無信不立)
  • 김성한 _ 수필가
  • 승인 2023.05.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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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의 어렸을적 얘기다.

머슴 마당쇠가 사색이 되어 들어와 위에서 말 한 그분의 아버님께 아뢰었다. "대감마님 큰일났습니다. 도련님께서 물에 빠지셨습니다. 도련님이 타신 나룻배가 강 한가운데서 가라앉았습니다."

대감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아이는 물에 빠져 죽을 아이가 아니다" 다시 마당쇠가 말했다. "나룻터에서 도련님이 배에 올라타신 것을 보고 돌아오다가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니 강 한가운데서 그 배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 허허 네가 잘 못 보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렇게 죽을 애가 아니래도 그러는구나."

그렇게 서로 죽었다느니 죽을 아이가 아니라느니 하고 있는데 그 도련님이 나타났다. 마당쇠가 크게 놀라고 대감이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나룻배에 올랐는데 배가 낡아 있고 배 밑바닥에 물이 차 있었으며 손님들 또한 많이 타 과적이 되어 물이 배 시울 까지 차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고 그 배의 안전을 위하는 것도 될 것 같아 다음배를 타려고 내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그 배가 강 한가운데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얘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믿음은 컸던 것이고, 아버지에게 믿음을 그토록 주었던 그 아들 즉 도련님은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가족간에 믿음이 없으면 그 집안은 장래가 없으며 군신간에 믿음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고 하였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논어 안연편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정치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공자의 대답. 첫째 식량을 풍족히 하고(足食), 다음은 군을 강하게 해야 하며(足兵), 세 번째는 백성들로 하여금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民信之矣).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 세가지 중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

공자의 대답 "군(軍)이다. 불가피 또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식량이다. 끝까지 버려야 하지 않을것은 믿음(信)이다"

믿음 즉 한자의 신(信)은 사람(人)과 말(言)이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동물이 아닌 사람만이 믿음을 주고받으며 그것은 행동보다 먼저 말로서 구축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말로서 믿음을 주고 말로서 믿음을 깬다.

그런데 말 때문에 온 나라가 요란하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이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믄' 이며 국회가 '미 의회' 가 아니고 '우리나라 국회' 라고 했다.

너무 구차하여 안타깝다. 소가 웃을 일이다. 그 말 자체만 보면 소가 아니라 돼지가 웃을지라도 말이 된다. 그러나 그 말의 맥락과 그 말이 있게 된 전후 사정을 보면 '난리믄' 이나 '한국 국회' 는 얼토당토 않다.

그날 회의에서 개발도상국 후원금을 미국은 50억 달러를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1억달러를 말했다. 그리고 회의장에서 바이든을 만나려고 상당시간을 기다렸는데 가까스로 만나 악수를 하는 시간은 고작 48초간이였다. 그건 그의 말대로 쪽팔릴 일이였다. 그래 머쓱해져 회의장을 나오면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또, 일본과의 관계에서 "-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라고 한 발언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말이 언론과 야당 그리고 학계에서 또 말썽이 되자 대통령실과 국힘당에서 말의 주어(主語)를 논하며, 대통령인 윤석렬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일본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사를 쓴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며 영어로 된 원문을 공개했다. 참으로 우습고 쪽이 팔리게 된 사건이다. 그가 한 개인이라면 그의 말대로 쪽만 팔리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으로서는 민신지의(民信之矣) 즉 국민의 믿음을 깨 버리는 것이 된다.

봄이다. 엊그제까지 찬바람 몰아치던 들판이 연록색이다. 이제 곧 농민들은 들판에 나가 못자리를 할 것이다. 계절에 대한 믿음때문이지만 그러나 암울하기만 하는 봄날이다. 들 건너 숲속에서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 시어머니 때문에 굶어서 죽은 며느리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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