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영랑과 다산
[다산로] 영랑과 다산
  • 하종면 _ 향우, 변호사
  • 승인 2023.04.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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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면 _ 향우, 변호사

계절의 여왕 5월은 꽃 중의 왕이라는 모란이 피는 달이다.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어야 진정한 봄이고 모란이 지면 한 해가 다 지나갔다고 슬퍼하였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면서 코로나 확진환자의 동선(movement) 조사를 엄격히 할 때 아는 변호사와 커피 한잔하면서 내 고향 강진과 김영랑 그리고 다산 정약용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더니 그 변호사가 간단히 줄여서 하는 말이 '동선이 똑 같네요'이다.

김영랑 선생은 강진에서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보에 진학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왔고, 필자도 강진에서 중앙국민학교와 강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당시 서울 비원 옆에 있던 휘문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김영랑 시인과 동선이 똑 같다.

나의 모교 휘문고등학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 시인을 비롯하여 '봄봄',  '소낙비',  '동백꽃'의 춘천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 선배, '향수'의 정지용 시인, 월탄 박종화 선생,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홍사용 시인, 소설 '임꺽정'의 홍명희 선생, '오발탄'의 이범석 선생, '얄개전'의 조흔파 선생, 그리고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남한산성'의 김훈 소설가 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이런 기라성 같은 선배들 중에서도 나와 동선이 같은 김영랑 시인을 가장 좋아하고, 김영랑 시인의 시 중에서도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어덕에 바로 누워', '오-매 단풍 들것네'를 평소 즐겨 읽는다. 글맛이 입안에서 보드랍게 살살 녹는 크림빵 같다고 하면 혹시 시인께서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에 약 20년 전에 서재 겸 은퇴 후 거처할 곳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마련해놓은 누옥이 있다. 옛날에는 주말에 서재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산도 보이고 논과 밭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다. 이름하여 '다산신도시'라고 한다.

이곳에서 차로 30분 거리로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다산생태공원'을 가족과 함께 찾아가서 거닐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바다와 같이 폭넓게 펼쳐져 있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잠시 넋을 놓기도 한다. 특히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가 그곳에서 산책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곳에는 다산의 생가(여유당)와 묘 그리고 실학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누옥 가까이는 '다산중앙공원'이 있고, 넓은 뜰을 가진 '정약용도서관'이 있어, 언제든지 걸어가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다산과 동선을 같이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강진읍에는 간판에 '다산'이 들어간 상점들이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다산'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 접하게 되니, 다산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산이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강진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하면서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목민심서, 각종 제도개혁에 관한 경세유표, 그리고 실학사상에 바탕을 둔 여러 책을 집필하여 후세에 길이 남게 한 것은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산이 노비종모법에 따라 노비가 감소하자 이를 비판하고 일천즉천(부모 중 한 사람이 노비면 자식도 노비)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고, '여유당전서'에서 '나라의 모든 백성이 통틀어 양반이 될까 걱정한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기존의 신분제도 유지를 주장하였던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율성(autonomy)을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간과하였다는 등의 비판적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옥이 있는 다산1동의 주민수가 10만 명이 넘었고, 전국 공공도서관 중의 6번째로 크다는 정약용도서관이 들어서는 등 주위가 날로 번창하는 것을 보면, 요즘말로 하여 '다산마케팅'을 참 잘하고 있다는 감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 고향 강진과 비교하면 부러운 생각과 더불어 묘한 시기와 질투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각종 문헌과 언론매체에 나오는 다산의 유배지 강진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도 않고, 특히 주민수가 날로 줄어들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주민수를 늘리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고향사람들을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인구가 대도시로 몰려들어 시골 지역의 주민수가 감소하는 것은 내 고향 강진만의 문제는 아니고 선진 여러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도시화, 과밀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는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얼마나 부귀영화를 많이 누리고 오래 산다고...봄에는 뜰 안에 모란이 피는 것을 기다리고, 언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 하늘 뜻 없이 바라보면서 유유자적하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영랑의 고향이 다산의 고향과 같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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