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강진달빛한옥마을
[다산로] 강진달빛한옥마을
  • 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 승인 2023.04.1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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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월출산에 달이 뜬다. 천황봉에 둥두렷하게 둥근달이 떠오른다. 새하얀 달빛은 구정봉 큰바위얼굴을 향해 목례하듯 크게 한번 굽이치더니 능선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기암괴석 사이사이로 가파르게 달려 내려온다. 오르락내리락 쉼 없이 내려온다. 절벽의 소나무 가지를 물들이고 산짐승들의 목덜미도 슬쩍 쓰다듬고 내려온다.

바람재에 도착한 달빛은 잠시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경포대 계곡을 가로질러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뒤척이던 다람쥐 몇 마리 슬며시 눈을 뜨고 바라본다. 봄빛으로 물이든 계곡물이 졸졸졸, 달빛소나타를 연주한다. 졸참나무 잎새 한 잎 달빛을 싣고 떠내려간다.  

달빛은 눈 깜짝할 새 강진달빛한옥마을 들머리에 도착한다. '휴휴당'이 고개를 내밀고 먼저 맞는다. 돌담의 영춘화가 그 노란 눈빛으로 달빛을 맞는다. 마당의 돌탑이 합장하듯 눈을 지그시 내리뜨고 맞는다. '쉼과 꿈'은 잠시 쉬었다 가라 손짓한다. '달빛한옥'도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긴다.

길 건너 '너와 나의 둥지'는 아예 하룻밤 묵어가란다. '월영재' 정원의 명품 소나무가 허리를 굽히고 넌지시 바라본다. '여락재'의 보름달방과 초생달방에서 노란 불빛이 새나온다. 도란도란 얘깃소리도 들린다. 맞은 편 '날마다 좋은집'은 마을 노인회장 부부의 집이다. 연분홍 애기사과꽃 곱게 핀 대문 없는 대문이 운치를 더한다. 어르신께 인사라도 드리고 갈까 하다 마음을 돌린다. 시간이 늦었다.

몇 걸음 길을 건너니 규모가 제법 큰 한옥이 나타난다. '금릉정'이다. 고목의 매화가 홀로 활짝 피어 집을 지키고 있다. 중앙공원 노란 수선화 군락을 배경으로 피어있다. '달빛한모금 바람한스푼' 이런 멋진 이름을 짓고 사는 이는 누구일까. 잠깐 들러 대청마루에서 차 한 잔 나누고 싶다. 앞집 '별유풍경'은 또 어떤가.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뜻을 가진 당호답게 돌담이 예술이다. 국가유공자의집,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밤이 더 깊었다. '돌담이 정겨운집' '사휴재' '첫들머리집' '행운의집'을 지나 우측으로 접어드니 '소나무'집과 물레방아 물소리 찰랑찰랑 들리는 '달빛마루'가 나온다. '태양아래월출산'이 우뚝 서있고, '휘영청'이라는 당호가 걸린 '달빛줍기'를 지나 '초연재' '뜻이 있는 집'을 돌아가니 다시 중앙공원이다. 노란 조각달, 두 개의 작은 별 조형물이 졸고 있다.

애저녁 초승달이 용마루에 걸터앉아, 기우뚱 허리 굽혀 수묵화를 그리는 밤. 달빛을 줍고 있는 나, 그림 속을 걷고 있네. 
-유헌「강진달빛한옥마을」전문  

중앙공원 정자를 옆에 끼고 내려가니 돌담집들이 이어진다. 돌담 너머의 '달빛미소'가 봄밤을 설레게 한다. '별바라기'의 별채는 정승댁 사랑채를 닮았다. 정자에 별빛이 내려 쌓이고 있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오니 한옥마을 이장댁 '보금자리'이다. 유일한 ㄷ자 한옥이다. ㄱ자 한옥촌의 ㄷ자, 예스러워 보여서 좋다.

옆집 고풍스런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부부의 꿈이 영그는 '해로당', 잘 익은 감빛 노을, 석양이 아름다운 '석양두리', 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평안누리'를 지나니 '수류화개'이다. 물 흐르니 꽃이 핀다. 북송시대 황산곡의 시구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우주의 깊은 울림을 짓고 사는 이는 또 누구인가. 마을입구 '화담재'와 '과운화향'까지 순식간에 30세대를 둘러봤다. 달빛으로 물이든 한옥촌의 밤이 대낮처럼 환하다.

강진달빛한옥마을이 월출산 남쪽자락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김영성 이장을 중심으로 30세대 주민들이 명품 마을을 일궈냈다. 한옥의 처마선 따라 이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 그 곡선의 미학으로 둥글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을 뒤 천황봉처럼 꿈은 높게, 십만 평 녹차밭처럼 마음은 넓게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지붕 기왓장에 켜켜이 시간이 쌓이고 담장에 푸른 이끼가 내려앉을 그 십년 후의 강진달빛한옥마을 모습이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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