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 강진신문
  • 승인 2023.03.22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 (20)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위에 요순 같은 임금이 있으면 아래에 요순 같은 백성이 있게 마련이고,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 밑에서는 도척(盜跖) 같은 자도 충의를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다" 라는 옛말이 있다.
단순히 사람을 부리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쓰려면 반드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선비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이 자기를 사랑 해주는 자를 위해 치장한다"라는 말은 상호 간에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 주느냐 하는 문제다.

여기서 선비가 지기(知己)를 위해 어떻게 처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거는지 중국 고사를 통해 살펴보겠다.

전국 시대 안영과 월석보의 고사
전국시대 안영(晏嬰)은 제나라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으며, 재상이 되었으면서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한가지 이상 놓지 못하게 하였으며 첩에게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다.

조정에 나가서는 왕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에 따랐지만 바르지 않으면 따르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안영은 당시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명사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당시 월석보(越石父)라는 어진 사람이 어쩌다가 죄인의 몸이 되었다. 안영은 길에서 우연히 월석보와 마주치게 되었다.

안영은 자기 마차를 끄는 말 한 마리를 풀어 월석보의 속죄금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마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도착한 안영이 아무 말도 없이 내실로 들어가 버리자 월석보가 안영에게 돌연 절교하겠다고 했다. 안영은 깜짝 놀라 의관을 바로 하고 사과하며 물었다.

"내 비록 어질지 못하나 당신을 곤경에서 구해 주었소이다. 어찌 이토록 빨리 인연을 끊으려 하시오?"

월석보가 답하길 "내 듣기로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기 뜻을 내 보인다고 하더이다. 내가 죄인들 사이에 있을 때 옥리들은 나를 몰라주었으나, 공께서는 속죄금을 내면서 나를 구해 주었으니 나를 알아 준거 아니오이까? 나를 알아주면서도 나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지 않으니 차라리 죄인의 몸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소이다"

그러자 안영은 마당에 물을 뿌려서 깨끗이 청소 시킨 다음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월석보를 상객으로 초대했다.

월석보는 이를 사양하면서 "아무리 상대를 공경할지라도 길 가던 중에 예의를 차릴 수 없고, 예의를 아무리 요란하게 차리더라도 아래와 위를 구분해야 한다고 들었소. 선생께서 저를 대하는 예절이 너무 부담스러워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안영은 월석보를 늘 귀빈으로 접대하였는데, 과연 월석보는 후에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춘추시대 말 진(晉) 나라 협객, 예양(豫讓)의 고사
예양은 진나라 대부 범 씨(范氏)와 중항 씨(中行氏)를 섬겼으나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당시 진나라는 범 씨, 지 씨(智氏), 중항 씨, 위 씨(魏氏), 한 씨(韓氏), 조 씨(趙氏)가 정권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백이 가장 세력이 강했는데, 예양은 후에 지백을 섬기게 되었으며 총애를 받았다.

지백이 진나라 통일을 위해 먼저 조양자를 몰아내려 하자, 조양자는 한 씨, 위 씨와 함께 지백을 죽이고 지백의 땅을 셋으로 나누어 가졌다. 그뿐만 아니라 지백의 해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썼다.

예양은 산속으로 달아나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예양은 이름을 바꾸고 죄수로 가장하여 조양자의 궁에 들어갔다. 예양은 항상 비수를 품은 채 뒷간의 벽을 바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조양자가 뒷간으로 들어오자 비수를 꺼내 찔러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예양은 붙잡혀 심문을 받게 되었다. 예양은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나는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했을 뿐이다" 모두가 그를 죽이려 했으나 조양자는 예양을 풀어주라고 했다. "나야 조심하면 그만이다. 저 자는 의로운 자이다. 지백은 이미 죽었고 후손조차 남아있지 않은데 가신 된 자로서 지백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니 천하가 알아줄 어진 자가 아닌가?"

풀려난 예양은 몸에다 옻칠을 하여 문둥이로 변장하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변하게 하였다. 혹시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지 않은가 시장에 나가서 구걸을 하였는데 아내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후에 예양은 조양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다리에 다다르자 조양자의 말이 놀라서 조사해 보니, 예양이었다.

조양자는 예양을 꾸짖었다. "너는 이미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기지 않았느냐? 지백이 그들을 모두 없앴지만 너는 중항 씨와 범 씨를 위해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지백의 신하가 되었다. 게다가 지백은 이미 죽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유독 지백을 위해 복수를 하려 하느냐?"

예양이 답하길, "맞는 말이오. 그러나 틀리기도 하였소. 나는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지만 범 씨와 중항씨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하였기에 나 또한 보통 사람처럼 보답하였을 뿐이오. 그러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하였기에 나 또한 지백을 국사로서 대접하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서 조양자는 감격하여서, 울면서 말하길 "애석하다. 그대는 지백을 위해서 충절을 다했다는 명예를 지켰고 나 역시 그대를 충분히 용서하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대를 다시 살려 줄 수는 없다" 조양자가 예양을 처단하려고 하자, 예양은 마지막으로 조양자에게 부탁하였다.

"옛말에 충신은 명예와 절개를 위해 죽을 의무가 있다 하였소. 비록 오늘 일로 내가 죽어 마땅하지만 원컨대 당신의 옷이라도 칼로 쳐서 원수를 갚으려는 내 뜻을 이루게 해주시오. 그렇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조양자는 예양의 의로움에 감탄하여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었다. 예양은 칼을 뽑아 들고 조양자의 옷을 세 번 내리치면서 "비로소 지하에 잠든 지백에게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결하였다.

사실 예양은 자기를 알아준 지백에 대한 은혜를 갚는 의로움이 돋보이지만, 진정한 선비를 알아주는 조양자의 너그러움과 대범함이 훨씬 돋보이는 장면이다. 조양자는 이러한 인품으로 주변 사람들을 덕으로 감화시켜서 이후 전국시대의 7웅 중의 하나인 조(趙) 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논의되고 있는 중요한 주제다.

어떤 사람은 엄격한 법(法)으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유가의 사상에 따라서 인의(仁義)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어떤 사람은 도가의 책략을 선호해서 무위(無爲)로서 천하를 다스리면 된다고 한다. 물론 유가와 법가의 사상을 겸용하거나, 겉으로는 유가지만 실제로는 법가를 채택하자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가와 인간을 다스리는 책략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인격을 존중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조폭의 세계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공익을 무시하는 집단에서는 진정한 의리가 생성될 수 없다.

지도자가 조직에 속한 개인의 존엄성과 진정한 선비 정신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을 때, 비로서 선비가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경지에 이르지 않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