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숨 쉬는 돌
[다산로] 숨 쉬는 돌
  • 유헌 _ 시인·한국문협이사
  • 승인 2023.03.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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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한국문협이사

푸드득, 깊은 산속 계곡을 가로질러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순간, 돌덩이가 굴러간다. 새의 뒷발질에 놀란 돌멩이가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구르고 있다.

그는 태초에 물이었다. 바람이었다. 한 줌 햇살이었다. 흙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에는 늦은 밤, 먹이를 찾아 두 눈에 푸른 등을 달고 가파른 골짜기를 오르내렸을 늙은 여우의 발가락이었을지도 모른다. 

서해바다 칠흑 같은 개펄에 묻혀 하릴없는 세월을 보냈을 조개무지의 일부였을 수도 있는 일. 그게 세상 밖으로 나와 햇볕에 그을리고, 비바람에 닳고 닳아 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무수한 세월을 건너 먼지처럼 살아오다 돌이 되었을 것이다.

새뜻한 햇살이 경포대 계곡을 봄빛으로 물들이던 날, 아내와 나는 월출산 바람재에 올랐다. 산등성이에 도착했을 때는 무수한 바람들이 무리를 지어 안개를 퍼 나르고 있었다. 산 아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이미 눈앞의 구정봉과 저 멀리 능선 너머 천황봉은 사라진 지 오래된 듯했다.

월출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들을 단숨에 집어삼킨 작은 물방울 쇼의 마력, 능선을 따라 펼쳐진 월출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눈을 감고 바라본다. 그대로 한편의 대서사시가 되어버린 바위산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또 한바탕 바람을 몰고 몰려온다. 

졸참나무 숲을 옆에 끼고,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계곡은 수 없는 폭포를 만들어 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물빛을 응시한다. 물속에 반쯤 잠긴 돌멩이 가슴 사이로 물소리가 지나간다. 아내가 손가락만한 돌멩이를 집어 든다. 모양이 예쁘단다. 하트 모양이란다.

수수만 년 전,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에서 이름 없는 산새의 뒷발질에 놀라 쓰러진 그 돌멩이가 바람 부는 대로, 빗물이 흐르는 대로 구르고 굴러 여기에 당도했을까. 긴 여행을 마친 그 돌조각은 어느 날 문득 그렇게 해서 우리 집 거실로 걸어왔다. 월출산 경포대 계곡물에 몸을 던져 그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한낱 이름 없는 그 작은 돌멩이가...,

아내는 그 돌덩이에서 숨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돌멩이는 숨을 쉬고 물을 먹고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아니 아내가 말을 걸고 있었다. 눈길을 주자 심장에 피가 돌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침햇살이 머리를 쓰다듬자 금방 발그레 홍조를 띠며 다가온다. 구석구석 스프레이의 물세례에 주르르 눈물까지 보인다. 사라진 지난 세월이 못내 그리워서일까. 이제야 알아차린 탄생의 아득한 비밀이 허무해서일까. 이내 창밖 너머 구름발치에 눈길을 주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

저걸 요즘 말로 수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형태나 색채, 무늬 등이 묘하고 아름다운, 관상용의 자연석을 수석이라고 한다면, 눈앞의 이 쪼꼬만한 돌멩이는 수석이 될 수도 없다. 아름답지도 묘하지도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단지 아내의 눈에 특별한 모양으로 보였을 뿐이다.

나는 무지하게도 수석은 빼어날 수(秀)의 수석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니 수석(壽石)이었다. 목숨을 갖고 있는 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무릇 생명이란 꼭 숨을 쉬고 아픔을 느끼고 피를 흘려야만 살아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꽃잎에도 이야기가 있다. 나름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동백꽃은 길바닥에서 두 번 핀다고 하지 않던가. 지리산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 가는 길, 제석봉 비탈의 주목나무 고사목들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세울 수 있다면, 돌멩이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감탄할 줄 아는 감성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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