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거리
남과 북의 거리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10.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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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홍(국가전략연구원장/ 건대 정외과 교수)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여서 그런지 알다가도 모를 나라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우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그리운 그런 ‘애증의 존재’는 아닐는지.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을 통해 한 민족임을 느꼈고, 통일이 금방 될 것만 같은 설레임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도 잠시,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정부지원금과 정상회담 합의 실천문제로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에 대한 논란이 분분해갔다. 북한에 대한 경계심 촉구와 퍼주기식의 대북산업을 중단하라는 여러 목소리들도 나왔다. 과연 우리는 북한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4000억 비밀 지원설에 대한 폭로가 있는 상황에서 부산에선 아시안게임이 성황리에 끝이 났다.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응원단을 둘러싸고 언론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역시 남남북녀’, ‘북한의 미인기준의 변화’, ‘김정일의 미녀 응원단 남파에 의한 공작’이라는 등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것은 북한 응원단을 상품화하는 보도와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자는 보도는 별개인가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도를 이용하여 응원단 상품화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하다가도, 금강산 관광이나 쌀지원, 북한 경제개방 등의 문제만 나오면 첨예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일부 언론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북한 경제개방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아낌없이 격려해줘야 한다. 그것은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이다. 북한이 페쇄의 길 대신 개방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물론 북한의 일이고, 북한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이고 우리에게 좋은 일인 것이다. 전쟁 대신 평화공존의 길이니 좋고, 서로 잘 살게 되는 길이니 좋은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북한 계산법’이다.

제발 ‘북한 경제 개방의 숨은 뜻’이니 ‘속셈’이니 하는 보도는 하지 말자. 자본주의 경제로의 첫걸음을 띠는 북한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어려운 경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금 우리 남한이 할 일이다. 북한의 결정이 옳은 것이고 용기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렸던 남한 가수들의 공연이 우리 쪽에 다시 방영되었다. 북한에서는 생중계로 방송되었다고 하니 참 놀라운 변화다. 특히 북한에는 생소한 록(Rock)음악을 하는 윤도현 밴드의 공연에 낯설어던 북한방청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윤도현씨가 ‘아리랑’을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히자 북한방청객들은 큰 박수로 그를 격려해주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같은 민족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가슴도 뭉클해졌다.

언제 이 분위기가 깨질지 아무도 모른다. 민족이라는 당위(當爲)에서 그리워하며 만나게 되지만, 현실적 적대관계에서 오는 차이와 상위(相違)함으로 서로를 더욱 증오한 채 헤어지게 되는 것이 남북관계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긍이었지 체념이 아니었으며, 실망이었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그리움은 키우고 싫음은 줄이는 노력과 시도를 강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불고 있는 ‘북풍(北風)’의 칼날에 남과 북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제발 이 걱정이 하룻밤 기우로 끝나길 바란다. 그리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멍에를 벗어버릴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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