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다산로]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3.02.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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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무엇을 얻으려면, 무엇을 버려야 한다"라는 말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실천이 쉽지 않다. 그런데 왜 버려야 얻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중국에서 살았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신발 한 켤레를 새로 샀다. 지금까지 중국 국내 여행 시 두껍고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서, 9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너무나 번거롭기 때문에, 비교적 간편한 등산화를 구매한 것이다. 큰맘 먹은 것이다. 요즘 무엇을 새로 산다는 것이 불편하다. 왠지 낯선 손님을 새로 들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새 신발을 샀으니, 신발장의 헌신 하나를 버려야겠다. 신발장을 뒤지다 보니, 재작년에 호주에서 사온 양털 가죽 신발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구매 당시에는 추운 겨울날 꼭 필요할 것이라고 강권하는 아내 덕분에 모른척했지만, 실제 신어 본 적이 없다. 뭘 새삼스럽게 양털 신발을 신어야 할 만큼 춥지도 않았고, 정히 추우면 조금 더 움직이면 되었다.

남는 내 신발 버려야겠다. 덕분에 신발장에 묵혀 있는 아내의 묵은 신발도 몰래 버려야겠다. 아내는 결코 버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신지 않고서 먼지만 가득 쌓여있음에도 말이다.

신발은 다 멀쩡하다. 왜 성한 물건을 버리는가 하는데,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다. 곱게 정리해서 쓰레기통 옆에 놔두면, 쓰레기 회수하는 아주머니가 기쁘게 활용한다. 아마도 그분들은 잘 신을 것이고, 신발 역시 기뻐할 것이다.

주섬주섬 모아서 쓰레기 재활용 장 옆에, 아내 눈길이 닿지 않을 곳에 버렸다. 이제 필요한 사람이 곱게 가져가면 될 일이다. 아! 그런데 몇 시간 후, 물건이 다시 돌아왔다.

아내가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시침 떼고 있다. 본인 신발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신발마저 원상 복귀다. 상황에 대해서 논쟁해 봐야 별 무 효과다. 이길 일도 없고 얼굴 만 붉힐 일이다. 언제 아내가 집을 며칠 비우는 사이에 몽땅 정리하면 된다.

사실 이렇게 정리한 것이 참으로 많다. 만약 그대로 방치했다면, 넘치고 넘친 물건들이 우리를 구속하고 모든 자유를 점령했을 것이다. 버리는 것은 내려놓는 것이며, 누군 가에게 주는 것이다. 쓸모 있을 때,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면 조그마한 덕이라도 쌓는 게 아니겠는가? 누구라도 사람은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누리고 나면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세상을 떠날 때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것, 오복 중의 하나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해야 한다. 버리는 것을, 내려놓는 것을, 남에게 쉽게 주는 것을 말이다.

무엇을 소유하고,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은 집착이라고 한다. 집착은 자신을 구속한다. 구속당한 삶이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새로운 물건에 집착하여 정작 본인 스스로 구속당함을 더 원하는 현실, 불합리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자유 자재 함이 필요하다.

젊었을 때에는, 하나를 버리면 하나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 환갑이 지나고 이순의 나이가 되었다면, 이제 모아 놓은 것, 조금씩 버려야 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하고, 천천히 내려놓을 나이가 되었다. 장자가 말하는 절대 자유를 얻는 세 가지 조건은,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이라고 한다. 즉 아집을 버려야 하고, 업적이나 성과에 대해서 욕심이 없어야 하고, 명예에 대해서 욕심이 없으면 외부 조건에 구애 받음이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단지 그것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근처라도 갈려고 한다면, 최소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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