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오랜만에 고향에 폭설이 내리다
[다산로] 오랜만에 고향에 폭설이 내리다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3.01.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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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12월 22일부터 24일 아침까지 폭설이 내렸다. 17년만의 큰눈이라고 한다. 우리 집 현관, 정원 구석구석마다 흰 눈이 수북이 쌓였다.

마지막 눈이 내리고 그친  24일 아침 주변 세상은 온통 눈 천지다.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데이다. 이런 날, 무엇을 해 볼 것인가?

오늘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 매봉산을 거쳐 서기산까지 설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서기산까지는 편도 8킬로미터, 왕복 16킬로미터 산행이다. 평소 같으면 편도 8킬로미터에 3시간 정도 소요되고 왕복 7시간 정도면 충분했는데, 눈이 가득 쌓인 오늘은 어떨지 궁금하다.

3명이서 출발한 산행, 뒷동산에 진입하자 흰 눈이 가득 쌓여있고 희미한 산길의 흔적이 묘연했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에는 토끼의 발자국, 멧돼지 종적만이 살아있는 자연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산속의 눈은 얼마나 쌓여있는가? 평균적으로 발목이 푹 잠길 만큼 눈이 쌓여있다. 바람 따라 몰려있는 그 어느 곳은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이런 눈길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것, 신발과 복장의 편리함이다. 발목까지 올라오고 방수처리된 등산화와 바지, 두꺼운 등산양말, 겉옷 파커, 보온용 목 토시 등으로 눈과 추위에도 걱정 없다. 참, 세상 좋아졌다.

옛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릴 적 눈이 오면 누구나 좋아했지만, 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은 고무신, 허름한 무명천 복장으로는 눈 속에서 1시간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눈밭에서 토끼처럼 잠시 뛰놀다가 비에 푹젖은 강아지처럼 방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물론 옷 망치고 왔다는 어머니 잔소리는 당연지사다.

그런 가운데 호사가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였던가, 어느 날 아버지가 시장에서 장화 몇 켤레를 사 오셨다. 그런데 무슨 그런 장화가 있는지, 제대로 짝이 맞지 않았고, 장화 내부가 균일하지 못해서 조그만 발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한번 들어간 발 다시 나오기는 온 식구가 장화를 잡아당겨야만 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장화 신고서 눈 속을 맘껏 휘젓고 다녔던 그 기분은 최고였다. 오늘은 편안한 등산화에 자신감이 넘친다.

산속에 가득 쌓인 눈더미, 무릎까지 차고 넘치는 눈 속의 보행, 소나무 상수리나무에 걸린 하얀 눈송이와 기기묘묘한 형상의 눈 조각, 흰 눈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파란 춘란 잎새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겨울 산행의 백미다.

눈 속을 헤치고 산행하는 것은 평상 시의 산행보다 소요 시간이 50% 이상 더 걸렸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1시면 서기산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후 2시 반경, 4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서기산 정상은 해발 511미터, 하늘은 파랗게 빛나는데 주변은 온통 백색으로 빛나고 있다. 서기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압권이다.
멀리 장흥의 천관산, 해남의 두륜산, 흑석산이 눈앞에 다가서고 있으며, 강진만을 끼고 우뚝 솟아있는 만덕산 봉우리와 그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덕룡산, 주작산 줄기가 눈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으며 우아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서기산은 강진군 성전면과 해남군 계곡면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산이지만, 우리 군에서 시작 지점인 참샘에서 서기산 정상까지 산행 도로를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 고마운 일이다.

하산 길은 해남군 계곡면 방향으로 택했다. 산길을 약 400미터 내려오니 탁 트인 비교적 넓은 임도를 만나게 된다. 임도는 서기산 5부 능선을 따라 강진군 도암면 신덕리에서 시작하여 해남군 계곡면까지 이어지는 산길이다. 서기산 자락은 의외로 크고 넓었다.

서기산은 지금은 폐교가 된 우리 모교, 도암 북 초등학교의 교가에 언급되는 산이다. 즉 ' 서기산 줄기 따라 이어진 기상..' 하지만 서기산을 다녀온 친구는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서기산이 학교와 너무 먼 8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왜 그 먼 거리에 있는 서기산을 교가에 언급했을까? 알고 보니 백두대간 마지막 능선인 서기산 줄기 중 일부는 도암 북교 뒷산까지 이어져서 마무리되어 있었다. 서기산 정기는 그렇게 우리들 가슴에 이어져 온 것이었다.

오후 4시 30분, 신덕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승용차가 우리를 태우고 산행을 마무리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말, 하얀 눈 속을 16킬로미터, 7시간 눈 속 산행을 감행했다.
나이는 이순을 넘었지만, 눈 속을 헤매는 마음은 어린 시절 딱 그대로였다. 폭설이 안겨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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