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겨울 방안의 그윽함, 유자와 모과의 향기
[다산로] 겨울 방안의 그윽함, 유자와 모과의 향기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2.12.0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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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필자는 샛노란 유자와 연한 노란색의 모과를 무척 좋아한다. 매년 11월 하순이 되면 유자와 모과를 한 무더기 사서 방안 한가운데 탁자에 올려놓고, 승용차 앞 좌석, 뒷좌석에 두었으며, 사무실 책상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비치하였다.

왜, 유자와 모과를 좋아하는가? 우선 색깔이 맘에 든다. 겨울이 되어서 모든 식물이 고스라져 세상이 삭막해 보일 때, 늦가을까지 남은 샛노란 유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묘하게 가슴을 설레게 하며 진한 고향의 향수를 불러오기 때문이며, 아울러 모과는 같은 노란색이면서도 우락부락한 모습이 시골의 정취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진짜 좋아하는 이유는 향기다. 유자와 모과의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두 과일은 각자 두어도 좋지만, 한 바구니에 함께 섞어 놓으니, 친한 오누이처럼 다정한 향기를 선사한다. 두 과일의 향기는 진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방안 구석구석 퍼지며 생활의 찌든 때를 살짝 뛰어 넘어서 부드럽게 우리들의 후각을 어루만져 준다. 분명 정숙한 젊은 아가씨의 옅은 화장품 냄새다. 노란 유자와 모과는 보기만 해도 묘하게 가슴이 설레고, 그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고향의 정다운 뒤뜰이 연상되는 정주지 않을 수 없는 과일이다. 그런데, 유자와 모과가 멋과 향기 만으로 눈길을 끄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어엿한 건강 과일로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밖에는 흰 눈이 펄펄 내릴 때 따끈한 유자차 한 잔 마시며 흰 눈을 감상한다면 전원 생활의 행복이며, 찬 바람 맞아서 목이 쉬고 간질간질할 때, 뜨거운 모과 차 한 잔 마시면 목이 개운해진다.

두 과일은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가? 한 번 살펴보자.

유자는 남도의 해풍과 적절한 기후에서만 자라는 고향의 특산물이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유자 나무 한 그루 있는 집은 분명 부자였다. 그 집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유자의 효능은 다양하다.

특히 "동짓날 유자차를 마시면서, 유자를 띄운 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면 일 년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으며, 유자는 "술독을 풀어 주고 술 마신 사람의 입 냄새까지 없애 준다"라고 동의보감에서 말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본초강목에서는, "뇌혈관 장애로 생기는 중풍에 좋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어쨌든 유자는 비타민 B, C가 다른 과일보다 풍부하며, 더하여 당질, 단백질 등이 풍부하여 감기 예방 및 치료, 고혈압, 중풍 방지, 피로 회복 및 숙취 해소에 좋고, 아 글쎄 변비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유자는 '보기 좋은 떡은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과일인 셈이다.

그럼, 모과(木瓜)는 어떤가? 예부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라고 할 만큼 못생긴 과일이지만, 은은한 향과 영양이 풍부하여 건강에 아주 좋은 과일이라고 한다. 모과는 산도가 강하고 단단하며 향기가 강한 열매로 가을에 누르스름하게 익는다. 노란색이지만 결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런 노란색이다.

모과나무는 비교적 키가 큰 낙엽송으로 늦가을이 되면 잎사귀는 모두 떨어지고 텅 빈 나뭇가지에 연노랑 색깔의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쓸쓸함보다는 왠지 추운 겨울을 지켜 줄 것 같은 수호신 같은 안정감을 주는 과일이었다.

역시나 모과는 겨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모과 과육을 꿀에 재워서 과자를 만들거나 과실주로 우려 마시거나 차로 끓여 마시면 한 겨울 보내는데 동장군이 무섭지 않다고 한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따뜻한 모과 차 한 잔 마시면서 설경을 감상하는 것, 분명 겨울 별미다.

시골집 거실 탁자 한가운데 유자와 모과 한 바구니가 자리를 잡고 있다. 노란 색깔이 주는 생동감과 설렘, 우아하면서 그윽한 고향의 향기가 자신 있게 올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유자와 모과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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