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아, 정다운 과일, 단감, 홍시의 맛
[다산로] 아, 정다운 과일, 단감, 홍시의 맛
  • 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 승인 2022.11.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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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 _ 전 포스코건설 중국지사장

바야흐로 홍시의 계절이다. 빨갛게 익은 홍시, 달콤한 수액, 쫀득거리는 미각, 부드럽고 상큼한 뒷맛, 수저로 홍시의 속 살을 살살 파먹는 재미는 하루의 즐거움이다.

감은 어릴 적부터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구황 식품이자 영원한 친구였다. 이제 감에 대한 추억 여행을 떠나 보자.

어릴 적 감나무는 그 집안 경제의 상징이었다. 우리 집에는 제대로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선망의 대상인 단감나무는커녕 알이 굵고 한 개 정도 먹으면 허기를 면해줄 수 있는 대봉감 같은 큰 감마저도 없었다.

잘해봐야 문 앞 담벼락에 붙어있는 재래종 감나무 두 그루였는데, 씨알이 하도 잘아서 가을이 되고 빨갛게 익어야만 겨우 입가심할 수 있었다. 왜, 아버지는 집안에 단감나무 한두 그루 심지 않았을까? 당시 어린 마음에 상처로 남은 조그만 푸념이었다.

4월 중순이 되면 앙상했던 감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고 파란 잎사귀가 뾰족하게 생기는 듯하더니, 어느 날 전체가 녹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벌써 6월 중순인 셈이다.

모내기를 하려는 그 시점에 감나무에 꽃이 피고 우리는 그 꽃을 감떡이라고 불렀으며, 배고픈 어느 때는 감 꽃을 먹기도 하였다. 감꽃은 조금 떫은 맛으로 입안이 텁텁하였지만, 물 한 모금 더불어 마시면 배는 든든하였다. 감나무 꽃의 위력이었다. 조금 지나면 그들은 튼실한 감 열매를 맺을 것이다.

7월이 되면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감 열매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감 열매가 손바닥 안에 반쯤 차게 되었을 때, 이제 감을 먹을 때가 되었다. 간 밤에 떨어진 감을 줍기 위해서는 남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옆집, 아랫집에 튼실한 감나무가 있다. 하지만 그 집에도 얼마나 많은 식구가 있었던가? 낙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치열했다. 보이지 않은 주인 행세도 만만치 않았지만, 최선의 방법은 새벽 일찍 가장 먼저 가서 주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낙과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스럽게 간밤에 바람이 세게 불거나 태풍이 오면 낙과 줍기의 호기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감 열매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주어 온 생감은 그냥 먹을 수가 없다. 떫기가 지나쳐서 감히 생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먹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우선 생감을 우려먹었다. 옹기에 샘물을 담고, 된장을 풀어서, 생감을 2~3일 정도 우리게 되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먹을만 했다. 두 번째는 생감을 쌀 항아리 속에 묻어 두는 것이다. 약 5일 정도 지나면 말랑말랑한 연시가 된다. 형이나 동생이 재워놓은 홍시를 훔쳐 먹는 재미는 일품이었다. 여름철 감은 보릿 고개를 넘길 수 있는 구황 식품인 셈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벼 이삭이 노릇노릇 해지기 시작하면, 감 열매도 덩달아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이제 단감을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당시 동네에 단감나무 소유주는 1~2 가구뿐이었다. 단감 한두 개 얻어먹으려면 친구에게 잘 보여야 했다. 숙제를 거들어 주거나 최소한 밉보이지는 않아야 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옆집 친구는 항시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먹고 싶은 대로 따 먹으라고 하였지만 눈치가 보여 실컷 따 먹지는 못했다.

단감의 맛은 한 입 딱 베어 물었을 때, 이빨 사이로 똑떨어지는 경쾌함과 사각거리며 입안에서 녹아드는 달콤한 뒷맛은 잊을 수가 없다. 아, 단감의 맛이다.

11월이 되면 울긋 불긋 물들은 감나무 잎사귀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빨간 홍시만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늦가을의 상징은 뭐라 해도 앙상한 감 나뭇가지에 걸린 빨강 홍시일 것이다.

이제 감 수확에 나선다. 그러나 손 닿는 곳에는 이미 열매는 사라졌고, 나무에 올라갔지만 손 길 닿은 곳도 홍시는 없고 남은 것은 나무 꼭대기 근처다. 그곳은 긴 장대 끝을 양분하여 조그만 대나무 가지를 끼우고, 감 열매를 따면 되었다. 남은 것은 까치밥이다.

11월 말이 되고 눈이 오면, 깊은 산속에 남아있는 홍시는 내 것이다. 흰 눈이 포슬포슬 내리는 날, 깊은 산속 감나무 끝에 남아있는 홍시를 따서, 어머니께 가져다드렸다. 생전의 어머니는 몸이 무척 약하며 홍시를 무척 좋아하셨다.

사실 까치 먹이를 따서 어머니께 드린 것으로, 까치에게는 미안한 셈이다. 나중에 아버지는 생활이 좀 더 여유로워지자, 제일 먼저 단감나무 묘목을 구매하여 텃밭에 심으셨다. 직장 생활하면서 한 번씩 고향에 가면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단감과 홍시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감은 정답기 그지없는 구황식품이었지만, 효능 또한 특별하다고 한다. 감의 떫은맛은 디오스프린이라는 타닌 성분으로 건강에 좋다고 하며, 감은 혈관 질환 예방, 숙취해소에 탁월하고, 비타민 C와 칼륨이 다량 포함되어서 부기 해소에 좋다고 한다.참고로 어릴 적 체하면 떫은 감을 된장과 함께 먹은 적이 있다. 아울러 감의 주황 색깔 요소는 눈 건강에 좋다고 한다. 아, 알고 보니 감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오죽했으며,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이라고 했겠는가? 

아, 정다운 감, 단감, 홍시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셈이다. 이 겨울에 많이 드시고 건강 유지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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