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옴(唵)천(川) 지명 신비(神祕)
[기고] 옴(唵)천(川) 지명 신비(神祕)
  • 조윤제 _ 수필가
  • 승인 2022.10.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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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_ 수필가

옴(唵)자는 불교에서 쓰이는 신성(神性)어 이다. 불교에서는 옴(AUM)으로 시작해서 사바하(娑婆訶 svaha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로 끝난다. 唵(암)(불교에서는 옴자로 발음한다) 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의식의 전후에 부르는 신성(神性) 음으로 히브리어의 아멘에 해당하는 말이다.

수행자는 唵(옴)을 사랑과 평등 극락(極樂) 명상의 대상으로 사용한다. 唵은 (AUM) A는 만물의 탄생을 말하고 U는 만물의 유지를 말하고 M은 종말을 뜻한다.

즉 A 는 창조의 神 브라마의 소리이고, U 는 유지의 神 비슈누의 소리이고, M 은 파괴의 神 시바의 소리이다. 그리고 唵은 신의 대명사이며 진리(眞理) 그 자체의 음성화 현상이다. 만트라(mantra)의 첫소리는 옴으로 시작해서 사바하로 끝나는 것이다.

唵(옴)자는 신성(神性) 어의 해석을 창조(創造) 유지 파괴(破壞)는 진리(眞理)라는 뜻으로 모인다.
그렇다면 왜 옴천인가 해법(解法)과 비밀을 풀어야 한다. 해법과 비밀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이 깊이 담겨있다. 삼국시대를 거처 고려가 개국 되었을 때 왕건의 국시(國是)가 숭불정책이었다. 그리고 그 왕건의 건국을 예언하여 신승(神僧)으로 알려진 도선(道詵)은 고려의 왕사이다. 왕사(王師)는 영암 구림 출신이다. 음양 지리 설과 풍수상 지법의 대가인 도선의 학설에 고려조는 전국 명승지에 절을 세웠고 연등회와 팔관회(八關會)는 고려 국가의 양식(糧食)이 되었다. 고려 호국 불교 신앙은 국가의 안위를 부처의 힘으로 국가를 불교 신앙에서 찾았다.

국가의 안녕과 만세 영원 발전을 위해 국토의 명승지에 사찰을 중건하고 국기를 튼튼히 하려는 시책이 진행된다. 그 여파는 영암과 강진 사이에 가로놓인 영산(靈山)인 월출산을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절정을 이룬다. 그 유적이 지금도 존재한다. 영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용암사지 등등 그리고 더욱 강진성전 월남사지터 근방에 수많은 절과 승려와 불자들의 기도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스님들의 수련장이고 도장(道場)이었으며 기도하는 곳이었다.

고증(考證)과 유적(遺跡)이 남아 내려오고 있다. 승려가 되는 구도(求道)의 길은 험난한 고뇌의 번민(煩悶)과 고통의 연속이다.

속인(俗人)의 영혼 세계를 인도하고 고뇌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승려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승려들을 위한 휴식처 암자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성전월남이나 월출산 주위는 물론 월남과 가까운 옴천과의 연관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척마을 입구가 지금도 지명이 동구(洞口)(절로 들어가는 산문(山門)의 어귀) 태이고 동네 안에는 불당골이 있다.

선방(禪房) 그리고 참선 했던 유적이 옴천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런 것으로 봐서 산세 좋고 물의 시원(始原)으로 물 맑은 옴천에서 시끄러운 대웅전 주변(周邊)을 떠나서 승려들의 불경 공부와 수행하기 좋은 지역이 필요해 옴천이 적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승들 마지막 생애(生涯)에 청정하고 조용한 옴천 좋은 터에 토굴(작은 움막)을 짓고 생활하다 조용히 열반(涅槃)에 들었을 것이다.

불교계 원로와 지도자들이 아니고는 불교계에서 신성시하는 옴(唵) 자를 감히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고대국가의 왕권이나 통치 체제상 아무 그곳이나 지명에 쓸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고려의 최고 불교지도자 급인 승려들의 동의가 없이는 사용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옴천에 거처를 마련한 어느 고승이나 크게 깨우친 대 각(大覺)자가 불교의 신성어인 옴(唵)자와 물의 시발(始發)점이라는 뜻으로 천(川)를 붙어서 옴천(唵川)이라 지명(地名)했었을 것이다.

지금은 옴천 어느 곳에도 암자와 절이 없는 것일까?

고려가 공양왕을 마지막으로 망한 것이다. 그때 불교의 타락이다. 신돈(승려) 등 전국 각지에서 사찰과 승려들이 부패한 것이다. 그때 새로운 정치 철학인 유교에 대치되는 정치 상황에서 월출산을 불교문화권인들이 어찌 피해서 가겠는가? 유구한 세월의 방치 속에 흔적이 사라 졌을 것이다.

십승지지(十勝之地)의 땅이라 옴천은 말한다. 전(前)조선대 총장 김기삼 저(著) 일부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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