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사는 처세술의 교본, 대학(大學)·중용(中庸)의 맛
인간답게 사는 처세술의 교본, 대학(大學)·중용(中庸)의 맛
  • 강진신문
  • 승인 2022.09.26 0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집]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14)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유교 경전(儒敎經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중용(中庸), 대학(大學)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겠다. 결코 전문가적인 관점이 아니며, 좋은 책을 보고 나서 보통 사람에게 소개하는 수준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이란 무엇인가? 사서(四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을 말하며,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을 말한다. 유교에서 사서라고 불림은 중국의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다. 주희(朱熹)가 <예기(禮記)> 49편 가운데 <대학> <중용>을 떼어내어 <논어> <맹자> 와 함께 사서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후 사서는 유교의 근본 경전으로 필독서가 되었다.

그럼 <예기(禮記)>는 무엇인가? 중국 오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역경) 중의 하나로서, 예경(禮經)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기>라고 한 것은 예(禮)에 대한 기록 또는 주석의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기>는 공자가 생전에 상고 3대(하, 은, 주)이래의 문물제도와 의례, 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했으며, 이를 실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공자 사후 제자들은 각국으로 흩어져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며, 문자로 기록하고 전승하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제자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기록도 다양해졌으나, 여러 사람이 모은 책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잡다하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다소 산만한 공자의 가르침을 <예기>로 집대성한 사람은 한나라 선제 때 대덕(戴德), 대성(戴聖) 숙질이었으며, 이후 한나라의 정현(鄭玄)과 당태종 시절의 공영달이 <예기>를 해석하고 정립시켰다.

자, 그럼 먼저 중용(中庸)에 대해서 알아보자. <중용>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은 <중용>에 대해서 'Good Sence'라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中' 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을 일컫는 것이며, '庸'이란 떳떳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희(朱熹)는 부연 설명하였으며, 정자(程子)는 기울어지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쉽게 바꾸어지지 않는 것을 '용'이라 해석했다.

종합적으로 '중용'은 변함없는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감각과 능력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은 약삭빠름도 아니고 우유부단함도 아닌, 인간이 체득할 수 있는 고도의 민감함과 조절 능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감각으로서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도 안정된 중심잡기를 말한다고 한다.

<중용>의 저자는 누구인가?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청대의 고증학이 대두되면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으며, 자사(子思)의 저본(底本)을 바탕으로 후세의 학자들이 상당 기간 동안 가필해 완성한 것이라는 주장이 세를 얻기도 한다.

그럼 <중용>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道)을 말하고 있다. <중용>은 흔히 유교의 철학 개론서라고 일컫는데, 중용 첫머리에 "하늘이 命한 것을 性이라 하고, 性을 따르는 것을 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敎라 한다" 라고 하였는데, 이 대목이 유교 철학의 출발점과 그 지향처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그 배움에는 길이 있고, 길은 바로 본성(本性)에 바탕하는데, 본성은 태어나면서 절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배우면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실한 것은 우주의 원리이고, 성실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우주의 운행 원리인 性을 깨닫고 배우고 실천하는 데에서 인격이 완성되며, 결국에 가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지도자의 9가지 비결은 무엇인가? 중용은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덕목을 다음의 9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능력이 있고 상식 있는 사람을 존경하며, 친족을 가까이 하며 사랑하고, 원로 공신을 공경하며, 신하들을 몸소 살피며, 서민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기술자들을 모이게 하며, 먼 나라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면 된다"라고 했다. 이는 스스로 준비하고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기준으로 볼 때 한두 가지 내용은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끼리끼리 문화의 폐습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도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을 챙겨야 한다는 '애민정신'은 중용의 도일 것이다.

피해야 할 인간의 유형, 3가지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리석으면서도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비천하면서도 스스로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사람, 현재에 태어났으면서도 옛길로만 돌아가려는 사람'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은 중용에서는 위험인물들로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드러내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존재지만, ' 너 자신을 알라! ' 라는 기준 속에서 자신을 키우고 현실 속에서 적응하는 것, 중용의 도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이며, 중용에서 그리는 이상형 인간은 어떠한가? "희로애락이 표현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고 한다" "드러내지만 상황에 모두 적절히 들어맞는 감정 표현을 '和'라 한다" "中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고, 和는 천하 모두가 공감할 도리다" "중과 화를 이루게 되면 천지의 질서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그 안에서 자라게 된다" 중용에서 말하는 마음 다스림의 요체는 고요함 속에서 분출되는 조화의 능력, '中과 和'로서 모두를 즐겁게 만들고 서로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용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교육을 통해서,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인격체를 말하고 있다.

자, 다음은 대학(大學)에 대해서 살펴보자. 대학(大學)은 송나라 주희 (朱熹)에 의해서 기존의 <예기>속에 '대학'을 따로 떼어 내어, 사서 중의 하나로 정립하였다.<대학>의 저자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가 않다.

<대학>은 진시황 이후 한나라 때에 정립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經)으로 불리는 부분이 1장, 그 경을 풀이한 전(傳)이 10장으로 이루어졌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과 요즘의 최고 학부인 '대학(大學)'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고전 <대학>이란 말속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첫째, 학교의 이름이다.

고대 중국의 귀족 아이들은 8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갔고, 15세가 되면 엘리트 수업을 받는 코스인 '대학'에 들어갔다. 둘째는 책 이름이다. 바로 사서 삼경 중의 하나인 '대학'이다. 셋째는 학문의 범주다. 고대에 엘리트를 가르치기 위한 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었으니, 단순한 학문의 내용 전달보다는 엘리트들의 학문하는 자세와 세상을 읽는 '커다란 학문의 세계'를 담고 있는 것이다. 큰 의미에서 요즘 쓰이고 있는 '대학'이라는 명칭과 대동소이하나, 가르치는 내용과 배우는 학생의 자세가 같을지는 모를 일이다.

자. 그럼 대학이 가르치려는 길로 가보자. 먼저 대학은 마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대학>이 가르치고자 하는 기본 정신은 양심의 불을 밝히는 데 있다. 매사를 지극히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처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는 도리를 알게 되면 마음이 결정된다. 마음이 결정되고 나면 동요란 있을 수 없다. 동요가 없으니 평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면 일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수 있고 마침내 목표했던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사물에는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이 있다. 또 끝과 시작이 있다. 따라서 일을 할 때에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할 것을 알게 된다면 거의 일의 도를 터득한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대학>의 기본 정신은 인간의 양심의 불을 밝히는 것에 기본 정신을 둔 것이다.

다음은 그 유명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정신이다.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국가를 다스리라!' 이 말의 원전은 <대학>이다. "수양을 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과 의지가 진실해야 한다" "천자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모두 자기 수양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 근본이 엉망인데 결과가 올바르게 나오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은 일종의 엘리트 관료들을 배출하는 교과서다.

그 교과서에서도 좋은 관리가 되고,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전제 조건은 먼저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치유하고,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좋은 말씀이다. 듣고서 지키지 않은 것은 그 사람, 몫이다.

마지막으로는 수시로 변해가는 민심에 대해서는 올바른 신념과 확고한 의지, 유연한 임기응변이 필요하다는 지론이다. "천심은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정치가 선하고 바르면 천명을 얻고 올바르지 못하면 천명을 잃는다" "열 개의 눈이 지켜보고,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니, 그 얼마나 엄하고 무서운가" "윗 사람이 일을 올바르게 하는데, 아랫사람들이 옳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법은 없다" "소인배들로 국가를 맡아 다스리게 하면 끝내는 재해가 한꺼번에 닥쳐 온다.

그러면 유능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사태에 이르고 만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국민들의 욕구는 수시로 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민심은 민심이 아니다. 변심에 의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임시방편으로는 불가능하다. 확고한 신념과 유연한 임기응변만이 변하는 인심에 대응할 수 있다 라고 설파하였다.

사서삼경, 중용과 대학, 지금의 세상에 너무나 고루하고 진부하다고 생각되는가? 사실 그렇다. 지금까지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고서, 오직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충성을 요구하고, 효도를 강요하고, 그 덕분에 호의호식하는 위선자들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평생 외롭고 고독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종종 실패하고 좌절을 겪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아름다운 삶과 남과 더불어서 잘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 속에는 고금을 뛰어넘는 인간의 길이 있다. 그래서 고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