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균관 발표, 「명절 차례상 표준안」에 대한 생각
[기고] 성균관 발표, 「명절 차례상 표준안」에 대한 생각
  • 윤영갑 _ 군농촌활성화지원센터장
  • 승인 2022.09.2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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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갑 _ 군농촌활성화지원센터장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을 며칠 앞두고 명절 차례상에 기름에 튀긴 전이나 지진 음식을 반드시 올릴 필요가 없다며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이 표준안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예법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세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라고 했다. 간소화 방침에 환영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표준안에 잘 따라줄지 모르겠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의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성균관의 추석 차례상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적·炙),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에 육류, 생선, 떡을 추가할 수 있다. 그동안 제사상에 반드시 지켜야 할 메뉴얼처럼 인식돼왔던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 동쪽, 흰 과일 서쪽)',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밤·배·감)는 옛 문헌에 없다며 편안하게 음식을 차리면 된다고 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지거나 도태된다. 나무 성냥 시절 가스라이터가 등장하자 대부분의 성냥공장은 업종을 전환했지만 나무 성냥을 고집한 공장은 결국 문을 닫고 파산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댓가를 치른 것이다. 추석 차례상도 그렇다.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그 시절은 짚신에 두루마기 걸치던 세상이었다. 온전한 시신의 화장(火葬)은 생각지도 못했고 관에 넣은 매장문화가 당연시되었던 세상이다. 제사는 뼈 숭배에서 비롯되었으며 불교계 자현 스님은 뼈를 불에 태우면 영혼이 끊어지므로 화장하면 제사를 안 모셔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실을 보자. 과거엔 집 밖에서 죽으면 객사(客死)라 하여 시신을 집 안으로 들이지도 못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변한 곳이 부지기수다. 종전엔 임종을 집에서 맞이하기 위해 생명이 위독하면 집으로 모셨지만 지금은 일부러 병원에 입원시킨다. 돌아가시면 장례식장 안치 후 화장장부터 예약하고 당일 탈상이 기본이다. 축·조의도 코로나 영향이긴 하지만 특별한 관계 아니면 대면보다 계좌 송금이 보편화되고 마음 전하실 곳 표기도 자연스러워졌다. 창호지에 붓으로 쓰던 지방(紙榜)은 컴퓨터에서 출력해 쓰는 그런 세상이다.

세상이 변했다. 모두가 변하는데 이를 고수한다면 고립되고 자칫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안도 고조부 형제가 계를 결성한 후 170년 이어오는 애공계(愛恭契)가 있다. 매년 정월에 그 후손이 모여 계를 치르는데 참석인원은 10여 명 내외다. 계 자본이 되는 임야와 전답 조서를 지번 대신 100여 년 전 골짜기 명을 그대로 쓰는 데다 창호지로 된 계책은 세로 붓글씨 쓰기를 하니 젊은 신세대들은 이를 이해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해 참석을 피한다. 매년마다 개선을 건의해보지만 수십 년 그 방식을 따라 해온 나이 드신 어른들은 요지부동이다.

제사 방식은 지역과 지방마다 다르다. 그래서 제사 자랑하는 게 아니며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 법이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지인의 문중은 지방과 축문을 한글로 작성한 지 오래되었다. 시제(時祭)의 축문 낭독을 어린 학생들에게 시키고 그 댓가로 일정 격려금을 준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아녀자들까지 참석시키고 교통비까지 제공하니 매년 참석인원이 늘어 난다고 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의 연속성을 대비하는 모습이 부럽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다. 옛것을 익혀 새로움을 얻는다는 뜻이다. 변화가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의 성균관도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차례의 취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신세대의 의견을 반영한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은 것이다. 전통만을 강조하다가는 남녀·세대 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비용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벌초 또한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인가 벌초를 대행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고 연고도 없는 이가 남의 묘소 벌초를 해 주는 그런 세상이다. 옛 어른들 입장에서는 이런 불효가 없다. 그러나 현실인 것을 어이할 것인가.

금번 성균관 표준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세상이 변한 만큼 제사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갈등과 불화 없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부터 적용할까 했는데 이미 음식을 준비해 놓은 뒤라 내년부터 표준안으로 모실 것임을 고(告)하고 동생들에게는 다음부터는 차례상에 올릴 과일이나 간단한 음식 한가지씩만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큰며느리로 40여 년을 제사 준비를 도맡아 온 아내의 '음식 준비하는 내가 따라 줘야 되지...' 라는 다소 시큰둥한 반응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미 차례 모실 때 잔 올리며 고했으니 어쨌든 시도는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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